김영남(1957~)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서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네.

강물에 떠밀리지 않고 건너 목적지에

예정대로 닿을 수 있다는 걸 알았네.

그동안 가벼운 짐을 지고서

바퀴처럼 미끄러지고 헛돈 삶

오직 나를 위한 제자리였음을

뼈아프게 깨닫네.

이제 나는

등에 큰 짐을 지고서

남을 사랑한다네.

그 무거움으로 남을 용서한다네.

길을 나서며 걸음 가볍게 짐을 줄여 진 자여. 그대 다시 돌아가 두 어깨 가득 짐을 지고 나오라. 이 세상에는 지고 가야 할 짐의 일정한 양이 있는 법. 우리 짐은 그것을 모두 똑같이 나누어 진 셈이다. 누구나 감당해야 할 짐이 있거늘, 그대 가벼이 짐을 지면 남은 짐은 누군가 더 져야 하는 법. 그대 이미 세상에 대한 가해자다.

육체를 넘어서는 것 오로지 마음인 즉, 그대 가볍게 진 짐은 곧 세상에 대한 가벼운 관심을 낳느니, 그대 작은 짐은 세상의 무관심에 가 닿는다. 그대 어깨 가벼우면 이 세상 모든 짐도 가벼운 줄 알아 뒤돌아보지 않는다. 옆 사람도 살피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달려가며 세상 이리 순조롭다 잘 나간다 소리치리라. 제 안에 갇혀 두 눈이 굳게 멀리라.

보라. 남의 짐을 내가 진다는 것은 세상 아픔 내가 갖고, 기쁨은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 스스로 견디는 무거운 짐으로 길은 속력을 내고 온몸에 힘이 넘치리라. 참다운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 무거운 짐 지고도 길 똑바로 갈 수 있는 것, 세상의 어떤 물살에도 절대 떠밀리지 않으리라.

큰 짐을 지고야 사람 사랑하게 되고, 남과 함께 어울려 걸어가는 법이다. 서로의 작은 짐도 모여 세상을 굴리며 가는 힘, 급기야 그 무거움으로 남을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짐을 나누어 지자. 나누어 진 만큼 양은 늘어도 무게는 주는 법. 이웃 몰래 무거운 짐 한 줌씩 내가 더 지고 가자.

시인·한남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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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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