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정윤형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

지진과 쓰나미, 그로 인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지역은 토양이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그 결과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의 모든 판로가 막혔다. 이 상황은 현재는 물론 토양의 방사능 오염이 해소되기까지는 지속될 것이 예상된다. 해당 지역에서 농사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던 농민들에게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 땅이 꺼지는 한숨만 나오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 농민들이 새로운 농사법으로 활기를 찾고 있다.

피임약이 생명을 막는 약인가 아니면 생명을 구하는 약인가 하는 논쟁은 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하버드의대 존 록 교수가 피임약을 개발하면서 비롯된 논쟁이다. 존 록의 피임약은 1960년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았다. 그의 피임약은 난자 배출 억제 호르몬인 프로게스틴을 항상 유지시켜 배란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프로게스틴 알약을 이용한 28일 주기방식이 자연피임 방식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자연피임법인 생리주기법은 인정했지만 존 록의 피임법을 인공피임법으로 간주하였다.

한편 의학통계학자인 말콤 파이크는 80년대 초에 일본 원폭피해자위원회에서 연구하면서 피임약에 유방암 예방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발견을 바탕으로 말콤 파이크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피임약을 만들었다. 프로게스틴은 배란 후 분비가 증가하고 또 임신되면 계속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따라서 존 록은 프로게스틴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는 피임약으로 여성의 몸상태를 임신 상태인 것처럼 만드는 약을, 말콤 파이크는 여성의 몸상태를 폐경기인 것처럼 만드는 약을 개발하여 전혀 다른 접근법을 이용하였다.

기업들은 경쟁을 통한 차별화, 즉 치열하게 경쟁을 추구하다 보면 차별화는 자연스럽게 확보된다고 믿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오늘날 기업들은 스스로를 경쟁자들과 구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차별화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시장조사를 통해 자사 브랜드의 포지셔닝 맵을 작성하여 자신과 경쟁자들의 강점과 약점을 한눈에 파악해 볼 수 있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자사가 지니지 못한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차별화가 아니라 평준화이다. 경쟁 기업도 동일한 접근법을 채택하면서 장점이 두드러지고 확대되기보다는 서로의 약점만이 줄고 유사한 제품 개발로 제품군이 세분화되면서 결국에는 평준화 나아가 제품 간 차이를 파악하기 어려운 동일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문영미 교수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평준화의 흐름에서 진정한 차별화를 통해 대박을 터뜨린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했다. 정보와 광고로 채워진 포털사이트와 달리 백지와 같은 구글, 배송이나 조립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이케아,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 시장에서 작은 사이즈를 강조한 미니쿠퍼와 예쁘지 않은 신발 버겐스탁, 그리고 로봇을 애완견으로 소개한 소니와 기저귀를 팬티라고 판매한 P&G 등을 각각 제거, 분열, 변형을 통한 혁신 사례로 꼽았다.

문 교수는 진정한 차별화란 전술이 아닌 새로운 생각의 틀이며,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녀는 미래의 아이디어 브랜드 공통점을 제시하였다. 첫째 풍요와 과잉이 넘쳐 나는 현실에서 희귀한 가치 제안, 둘째 사소한 부분이 아닌 전반적 차원에서의 차별화 추구, 마지막으로 현실의 소비자들과 호흡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인간적인 숨결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후쿠시마 지역의 농민들을 소생시킬 열쇠로 양액재배가 활용되고 있다. 양액재배란 작물을 토양에서 재배하지 않고 대신 공중에 지지·고정시키고,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용해시킨 배양액을 분무하여 재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원전 사고로 오염된 일본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지역에는 대규모 원형 비닐하우스 양액재배단지가 지어져 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이 비닐하우스 단지는 기존의 일자형이 아닌 원형으로 만들어 더 많은 일조량을 확보하도록 설계하고, 또 작물에 공급되는 양액의 온도를 올려서 비닐하우스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40퍼센트나 줄였다.

후쿠시마 지역의 농민들은 차별화된 양액재배로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에서 새 힘과 소망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로부터 다름은 이기기 위한 도구 이전에 생존의 도구가 됨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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