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브람스

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독일의 작곡가)가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을 처음 만난 것은 1853년 9월 30일, 뒤셀도르프의 슈만의 집에서였다. 당시 슈만은 43세였으며 브람스는 20살이었다.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한 것은 이 시기지만, 사실상 브람스 혼자만의 슈만에 대한 접근으로서의 만남은 이미 3년 전에 있었다.

바로 슈만 부부가 브람스의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연주회를 가졌던 사기이다. 이때 슈만은 자신의 작품 `피아노 협주곡`을 지휘하고 아내 클라라가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청중의 반응이 좋지 않아 슈만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 있던 슈만에게 함부르크의 무명 피아니스트 브람스가 충고와 비평을 부탁하며 자신의 작품 몇 편을 보내게 되는데, 역시 슈만은 브람스의 작품이 담긴 소포를 개봉도 하지 않은 채 반송한다. 이 사실에 어린 브람스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브람스는 계속적인 음악활동으로 당시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하노버 왕의 궁정악장이던 요제프 요아힘을 만나 평생에 걸친 우정을 맺게 된다. 요아힘은 브람스의 천재성에 감동하여 당시 음악비평계의 중심에 있던 슈만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또한 당시 지휘자였던 바질리예프스키 역시 그에게 뒤셀도르프의 슈만 가(家)를 방문하라고 권하지만, 3년 전 슈만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남아 그들의 권유를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슈만의 작품을 공부해보라는 당시 음악애호가 다이히만의 설득으로 다이히만의 집에서 슈만의 모든 작품들을 연구한 뒤, 브람스는 이제까지 몰랐던 슈만 작품에 대하여 감탄을 하게 된다. 이 계기로 지난 날의 쓰린 상처의 기억은 사라지고 위대한 거장 슈만과 친교를 맺고 싶다는 열렬한 소망만이 가슴에 채워진다. 이로써 그는 당장 뒤셀도르프를 향하여 출발한다.

일찍이 요아힘은 슈만과 친교를 맺어왔으며 이를 빌미로 브람스는 요아힘의 `새로운 친구`로서 슈만 가를 방문하게 된다. 슈만 가의 아늑하고 온정이 넘치는 분위기에서 브람스는 자작곡을 즉흥연주한 뒤 이들 부부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브람스는 이후 약 한달이 조금 넘도록 뒤셀도르프에 머물며 거의 매일처럼 슈만 댁에 방문한다. 이 때의 슈만의 일기에는 브람스의 연주와 작품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재`, `세상을 뒤집어놓을 참다운 사도`, `젊은 혈기`, `젊은 독수리` 등으로 묘사되어있으며 슈만의 부인 클라라 역시 그를 `과다한 환상과 가장 친밀한 감정에 넘치고 대가다운 형식에 가득차다`라고 묘사하였다.

브람스의 타고난 북독일 출신의 과묵함은 슈만의 심오하고 이해 깊은 마음과 클라라의 섬세하고 애정어린 태도 그리고 슈만의 여섯 자녀들과 함께하는 온화한 집안 분위기에 의해 점차 완화되고 변화되어간다. 이에 대하여 요아힘은 `행복이 브람스를 한층 근사하고 고상한 남자로 만들어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슈만은 요아힘, 쇼팽과 같은 천재를 발견했을 때와 같이 `젊은 독수리`라고 생각한 브람스의 천재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다. 우선 슈만은 라이프치히의 당시 유명한 출판사에 브람스를 추천하게 되는데 슈만의 강압적인 권유에 못 이겨 브람스 작품을 들어보지도 못한 채 출판을 하게 된다.

또한 슈만은 24살부터 20년 동안이나 주필을 맡았던 음악잡지에 이렇게 그를 표현한다. "그는 요람에서부터 미의 여신들과 영웅들의 보호를 받은 젊은이로서… 이 사람이야말로 선택된 자라고 선언하는 징표들을 지니고 있었다."

당대 음악비평의 결재자였던 슈만의 이같은 글은 문화계에 큰 관심을 불러모았으며 브람스의 작품이 하루 빨리 출판되기를 열렬히 고대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브람스는 스승의 큰 도움으로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음악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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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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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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