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한순흥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

카이스트(KAIST)는 연구중심대학이라 대학원생들이 학부생보다 더 많다. 교수로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학생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은 짧게는 2년 길게는 9년도 된다. 이 기간 동안에 한 달에 한 번씩 개인면담을 하고, 수업과 세미나를 같이 하고, 연구수탁과제를 통해 정해진 연구테마를 같이 해결하면서 서로를 많이 알게 된다. 아마 우리 집의 아들딸보다 연구실의 학생들과 더 많이 같이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그 속에는 똑똑한 학생, 성실한 학생, 게으른 학생, 붙임성 있는 학생, 스승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모두 다 섞여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모범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학생들이 기대했던 능력보다 더 많이 성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모범생들이 직장에 진출해서도 주어진 일들을 착실하게 훌륭히 수행할 것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왜 성공은 못하는 것일까? 두 가지 정도 이유가 눈에 보인다. 그 하나는 모험심의 부족이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의 개척을 위해 누군가 맡아야 할 새롭고 중요한 일이 생기지만, 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일이 대부분이고, 그동안 그런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모범생들은 참여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다소 부족하고, 잃을 것이 많지 않은 용감한 사람이 맡아서는, 나중에 그 업적을 크게 평가받는 경우가 있다. 조심성이 많은 모범생들은 많은 경우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또 하나는 역경을 헤쳐 나오는 능력이나 경험의 부족이다.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대처하는 임기응변의 부족으로도 보인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어려운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IMF 경제위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쉬운 예로 험한 산악지역에 조난당한 여객기를 상상해 보자. 유럽으로 출장 가는 길에 탔던 비행기가 돌연히 히말라야 산속에 불시착하였다면,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 전에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불시에 맞은 역경에서 버티고 헤쳐 나오는 힘이 모범생들에게 부족해 보이고,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보인다. 예상하지 못하고 맞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한탄하고 좌절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약하게 주저앉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모두 그 원인이 실패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여 생긴 약점으로 여겨진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불리면서 몇 번 넘어지지 않고 피겨스케이팅의 국내 1인자가 되어버린 김연아 선수라고 할까? 세계의 벽을 넘어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려면 트리플 악셀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넘어져 엉덩이가 아픈 것이 두려워서 시도를 꺼려 하고, 더구나 세계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이고, 국제무대에서 큰 창피를 당할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인 쿼드러플 살코에 도전하는 것에 엄두를 못 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은 어른이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부담도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 결혼해서 가족이 생기면 나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여럿인데. 어떻게 모험을 할 것인가? 나이가 들수록 빙판에서 넘어지면 상처가 크게 생기고, 상처가 아무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어릴 적에 많이 넘어져 봐서, 그 어려움이 어떤 모습이고, 그 아픔과 창피함이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떨치고 일어나는 것인지 몸에 배어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시도해 보는데, 두려움이 적을 것이고, 만일에 대비하는 배짱도 크지 않을까?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고 하는 어른들의 말씀은, 군대 생활이라는 어려움이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다.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배우는 것이 50대 후반인 내 나이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도전이지만 젊은 학생들에게는 즐거운 놀이다.

모범생이 전국에서 제일 많은 카이스트에서, 그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교수가 모범생들의 약점에 대해 논의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많은 모범생들을 가까이서 보아온 경험으로 의견을 담아 보며, 한편으로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특히 훌륭한 능력과 좋은 성격을 가진 모범생들이, 그 가진 능력을 더 많이 발휘하여 사회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더 큰 일을 하여,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내기를 희망한다. 조금 더 넓게 보면, 유교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이 서양의 학생들에 비해 모범생 성향이 더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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