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4 23:55

[음악이야기]차이콥스키

2012-01-31기사 편집 2012-01-30 21:37:11

대전일보 > 에듀캣 > 논술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거장의 고집이 만든 피아노협주곡 제1번

차이콥스키(러시아 작곡가·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와 5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상관이자 선배였고, 친구였던 니콜라이 루빈슈타인(러시아 피아니스트·1835-1881)은 그의 환상곡 '태풍'과 '현악 사중주 2번'을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면서 점차적으로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다.

차이콥스키가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작곡했을 때 음악원 교수 경력을 이미 10년이나 쌓고 있었으며, 이 작품을 심혈을 기울여 작곡하면서 차이콥스키는 신경이 점점 예민해져갔다.

차이콥스키 자신에게는 1874년 12월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테크닉적인 측면에 대하여 이 방면의 비르투오소와 상의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까이 지내던 니콜라이에게 상의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초연해주고 대성공을 거두게 해줬던 최고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와 작품 얘기하는 것을 꺼려했을까?

차이콥스키는 이 방면의 비르투오소(virtuoso·음악의 기교가 뛰어난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지만, 그의 생각에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우수한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가 가운데서도 제1급에 속했기 때문에 먼저 작품에 대한 의견을 묻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다른 누군가에게 먼저 가져갔다는 것을 니콜라이가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심히 화를 낼 것이라는 것을 차이콥스키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이콥스키는 니콜라이에게 가서 작품을 들어보고 솔로 부분에 대하여 그의 의견을 말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그때가 바로 1874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음악원의 한 교실에서 차이콥스키는 제1악장을 연주하였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니콜라이는 잠시 뒤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 속엔 무슨 뜻이 있지?", "게다가 저길 봐요! 누구라도 그걸 연주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점차 목소리는 커지고 비평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음악원 교수 경력이 10년이 넘었는데도 차이콥스키는 작곡에 대한 아무런 식견도 없는 졸작가로 결론이 나듯, 니콜라이의 심각한 비평을 받고 분노와 흥분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방을 나간다.

상태를 파악한 니콜라이는 다른 방으로 차이콥스키를 불러서 조금은 진정된 말투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 개정할 부분이 많다고 말하며 협주곡을 니콜라이의 요구에 맞게 손질한다면 자신이 연주회에서 연주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차이콥스키는 말했다.

"나는 정확하게 지금 이대로의 상태로 이 작품을 출판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단 하나의 음표도 수정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행동에는 자신의 창작에 대한 본능적인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니콜라이의 가혹한 혹평에 대한 타격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몇 달 동안 그를 괴롭혔다.

문제의 사건 이후 차이콥스키는 당장 협주곡의 원고 속표지에 쓰여 있던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그에게 헌정하려했지만, 이제 그 지워진 자리에는 한스 폰 뷜로(독일의 피아노 연주자·지휘자, 18301894)가 새겨져 있었다.

이후 뷜로는 볼쇼이 극장에서 연주회를 가지고 공연을 마친 뒤, 이 협주곡을 차이콥스키의 완벽한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이 작품의 완벽함과 원숙함을 증명하듯 1875년, 미국의 순회연주 기간까지 계속 초연하며 뷜로는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니콜라이는 차이콥스키의 성공적인 연주를 보며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1878년, 그때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사건' 이후 3년 만에 니콜라이는 마침내 마음을 열고 작곡가 차이콥스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그는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하게 된다.

이 사실에 차이콥스키는 띌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이렇게 두 음악가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위대한 작품 때문에 다시 결합된 것이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첨부사진2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강은선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