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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속 미술여행]구스타프 쿠르베

2012-01-17기사 편집 2012-01-16 21: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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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해방 꿈꾸던 화폭 위의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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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는 사실주의(19C 중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유파)미술의 거장이다. 1840년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 공부를 위해 파리로 나왔지만 화가를 지망하여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서 스페인,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을 공부하였다. 1844년 살롱에서 이색적 화제로 첫 입선을 한다. 1850년에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적 주제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오르낭의 장례식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1867년 개인전으로 인정받는다. 1871년 프랑스 정부에 대항하여 파리에서 일어난 봉기인 파리코뮌 때 나폴레옹1세 동상 파괴 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1875년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스위스로 망명,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화가 앵그르와의 천사(天使) 논쟁 때 쿠르베는 "나에게 천사를 보여주면 나는 그것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그리지 않겠다는 태도로, 그는 고상하고 우아하며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당시의 지배적인 미적 규범(완벽한 육체, 미와 격조를 갖춘 여인)과 상반되는 노동자,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다. 그 밑바탕에는 19세기 프랑스의 과학주의적 태도가 깔려 있다. 그의 태도는 실증주의와 상응할 뿐만 아니라 과학주의와 연관을 맺은 근대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그에게 그림은 단순히 대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표현한 것을 넘어 현실 문제를 들여다보고 재해석하고 반영하는 통로의 공간이며 또한 자신의 삶 자체였다.

그의 사실적 작풍은 19세기 후반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고전주의의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표현을 멀리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한 그의 사상적 입장은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하고,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의 밀도를 촉구한 점에서 미술사상 의의가 크다. 그의 사실주의는 시각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인상주의의 선구가 되었고 독일·벨기에·러시아 등의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만남(The Meeting : Bonjour, Monsieur Courbet·1854, Oil on canvas·129cm×149cm)은 쿠르베가 몽펠리에에 도착하는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그의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가 하인, 개와 함께 마중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 그렸다. 당시의 규범적 예술은 교훈을 주는 역사화를 우선시 하였기에, 일상의 한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큰 충격을 주었다. 비평가는 화가 쿠르베가 중심인물이 되고, 후원자가 구경꾼이 된 구성에 주목했다. 자화상은 작가의 생각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돈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예술은 그 어떤 것에도 존속될 수 없음을 그림을 통해서 재치있고 해학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눈앞의 현실이었다. 진보와 퇴보, 희망과 절망, 풍요와 참담한 빈곤이 공존하던 19세기 고전 자본주의 시대의 생생한 현실이야말로 그의 예술적·정치적 관심사였다. 이 속에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존경과 예우가 다 들어있다. 그는 휴머니즘이 넘치는 예술가였으며, 자유와 해방을 꿈꾸던 혁명가였다. 이 그림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그린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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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현광덕 미술교육가·조각가·대전 와동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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