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광장- 박종빈 우송대 미디어디자인학부 교수

최근 많은 이들이 예전과 다르게 스마트폰, 자동차, 명품, 잡지, 개인 소품 등의 디자인에 대해 개인의 의견을 제시하고, 수많은 기업들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의 자리에서도, 직업이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디자인의 세밀한 부분까지 평가하는 전문가적 눈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디자인에 대한 이런 높은 관심에 비해 디자인교육 환경의 변화는 경제가 발전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관심을 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시선 또한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사회 통념상 디자인을 전공하는 것이 여타의 다른 학문을 선택하는 것에 비해 뛰어난 능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디자인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만들고 꾸미는 일보다 학문 연구가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인식과 또 현대에 와서 직업을 선택할 때 경제적 가치의 잣대가 우선시되는 데 비해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적정하지 않다는 두 가지 점에서 기인하게 된다. 이러한 획일화된 가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과 디자인은 다른 차원에서 비교되어야 한다.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탈리아는 디자인 강국이다. 모든 디자인 영역에서 건축, 제품, 그래픽, 가구, 인테리어, 자동차, 의류, 구두 등 수없이 많은 최고의 디자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교육이 시작되는 유치원 이전의 과정부터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많은 수업들이 그림을 그리며 배우는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을 수업의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포함시킨 것이다.

이런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적성을 깨닫게 되고, 많은 청소년들이 언어 수학 등의 과목에서 필요 이상의 심화 학습을 하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학생은 콘세르바토리오로, 가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가구 고등학교로, 미술에 관심 있는 학생은 예술고등학교로 나뉘게 되고 이후 다양한 전문과정이 준비되어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여 세계 최고의 인재가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각 전공 분야가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비교의 대상이 아닌 서로 다른 영역으로서 이해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춘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최근 한국의 디자인은 세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충분한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디자인이 아쉽게 느껴지는 경우 또한 종종 만나게 된다. 다양한 영역에서 어린 시기부터 대학까지 디자인을 접한 환경에서 나온 디자인과 대학 4년 동안(전공은 2년이지만) 배운 디자인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되는 부분이다. 한국의 디자인은 하나의 제품으로서는 뛰어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의 어울림이라는 측면에서는 디자인 제품 혼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많다. 지나치게 세련되어 어색한 느낌이랄까. 사람과 주변 환경, 디자인 이렇게 세 박자가 모두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인일 것이다.

몇 년 전 도시의 간판 정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을 때 문화와 역사, 시장 상황이 다른 도시들을 모델로 삼아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보기 좋다는 이유로 우리도 바꾸어야 한다는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물론 겉모습만으로는 당연히 그 도시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러나 단순한 미의 잣대로 보기 이전에 우리의 상황 전반과 그들의 것들을 검토해 일상생활과 어울리는 조화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상점들이 밀집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그를 통해 활기찬 상호 발전을 모색해 가는 생동감 넘치는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모델로 삼고자 했던 디자인 강국들의 상황과 같지 않음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주변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디자인이 아직도 어색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디자인이 곧 생활의 일부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은 미래를 이끌 새로운 인재를 키워내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표현해 보고 주변의 자잘하고 아름다운 일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하는 교육을 통해 경제 규모와 주변 환경, 사회 상황에 어울리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우리의 `디자인 강국이라는 꿈`은 교육 시스템의 새로운 변화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의 정착이 함께할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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