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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운동에 짓밟힌 ‘19세기 모차르트’

2012-01-10기사 편집 2012-01-09 21: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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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음악이야기]

첨부사진1멘델스존의 어린시절 초상화
올해는 '19세기의 모차르트'로 불렸던 멘델스존 서거 165주년이 되는 해다. 펠릭스 멘델스존(Jo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1809-1847, 독일의 음악가)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조부는 철학자였으며, 아버지는 은행가였다. 음악공부에도 제약을 받지 않을 만큼 풍족한 교육을 받았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모두 흡수할 정도로 머리 또한 명석했다. 멘델스존의 초상화를 보면 알겠지만 외모도 빠지지 않는 오늘날의 '엄친아'였다.

풍요로운 집안 환경에서 성장하였다는 이유로 항간에서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저평가하기도 하지만 그의 삶을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실상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음악 역시 낭만주의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멘델스존에 대한 저평가는 그가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대표적인 일화로 그가 죽은 뒤 독일을 통치한 히틀러는 '순혈주의'를 주장하면서 독일인의 우수성을 알리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바그너'를 우상화한 반면 유대인인 멘델스존의 음악은 짓밟고 격하하였다.

유대계라는 점 하나만으로 그가 받은 역사에 의한 시련과 고통을 짐작해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종교를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반 유대 운동'의 표적이 되었다. 히틀러는 박물관에 있던 멘델스존의 모든 유품과 악보를 불태웠으며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그를 기념해 게반트하우스(라이프치히에 있는 콘서트 홀) 근처에 세운 동상도 철거했다. 멘델스존은 쇼팽이나 슈만, 리스트, 바그너만큼 당시 유명세를 떨치며 음악가로 인정받았았다. 슈만이 그에게 '19세기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본래의 멘델스존 위상을 되찾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멘델스존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의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그 당시에는 죽음, 또는 누군가와의 이별의 충격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베토벤이 1827년에 죽고, 그를 가장 존경하던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다. 브람스가 사랑했던 클라라가 1896년 봄에 죽고 브람스는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라고 말하며 다음해 봄에 사망한다. 쇼팽 역시 1847년 9년간의 사랑을 끝난 뒤, 1849년에 사망한다. 멘델스존은 어땠을까? 멘델스존 역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죽고, 시름시름 앓다가 같은 해에 사망한다. 그 여인은 누구였을까? 연인? 부인? 아니다. 그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1805-1847)이다.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역시 멘델스존만큼 작곡 실력이 뛰어난 재원(才媛)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인 차별과 박해를 받아 이들 남매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으며 음악은 멘델스존과 파니의 남매애를 그 이상으로 끌어올려주는 매개체였다. 둘만의 남매애로 좀처럼 결혼을 결심하지 못했던 파니는 결국 빌헬름 헨젤이라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파니는 결혼을 기뻐하기는커녕 동생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눈물짓는다. 결혼식 당일에 파니는 멘델스존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 마음을 전한다.

멘델스존 역시 당시로는 노총각으로서 28살이 되던 1837년 3월 28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결혼을 한다. 그의 부인은 부유한 중산계급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맡았던 세실 장르노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프랑크푸르트 최고의 미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멘델스존의 결혼과 그의 부인 세실을 두고 파니는 동요하였고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었다.

결혼한 지 8개월이 지났음에도 멘델스존의 부인을 만나지 않다가 뒤늦게 세실을 만나본 후부터 동생의 결혼을 축복한다.

이후, 동생의 아내를 질투할 만큼 멘델스존을 사랑했던 파니가 1847년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마치 그 뒤를 따르기라도 하듯 멘델스존 역시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다.

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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