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특구본부 대덕기술사업화센터장

잔뜩 흐린 날씨에 눈발도 흩날렸지만 2012년 첫날은 어김없이 밝아 왔다. 제대로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1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지인들로부터 여러 장의 일출 사진을 받고 보니 스마트폰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임진년(壬辰年)을 맞이하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우리의 역사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선조 25년)이다. 율곡 이이는 1582년(선조 15년) 병조판서에 임명되자마자 국방강화를 주장하였다.

"나라의 기운이 부진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10년이 못 가서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10만의 군사를 길러서 변란이 생기면 위급한 때의 방비를 삼으소서. 이와 같이 하지 아니하고 갑자기 변이 일어날 경우, 백성들을 내몰아 싸우게 하는 일을 면치 못하여 전쟁에 지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율곡의 말이 있고 난 후, 정확히 10년 만에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조선은 엄청난 피해를 보고야 말았으니, 붕당에 휩싸이면서도 태평성대라고 착각하며 살던 선조의 피란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420년 전의 선각자의 선견지명이지만 이처럼 구체적이고 뚜렷한 목표가 있는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왜 무시되고 말았는지 후손들은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도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 권력 중심부의 복잡한 이해관계(정당 정책) 때문에 무시되거나 전면 폐지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몇몇 IT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입에서 `10만 해커 양병설`, `10만 S/W인력 양병설` 등 율곡의 주장을 패러디한 21세기형 양병설이 나오고 있다. 국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IT화되어 있다 보니 자칫 이 시스템이 마비될 경우, 나라의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또한, 하드웨어 경쟁력만 키우다 보니 애플이나 구글과 같이 소프트웨어 중심의 세계적인 기업이 삼성, LG, 현대와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대기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400여 년 전의 주장과 지금의 주장을 비교해 보면서 분명 시대의 상황과 분야는 다르지만, 이런 주장이 그냥 무시되었을 때 닥쳐올지도 모를 또 다른 모습의 국가대란이 걱정된다.

몇 해 전에 `대국굴기`라는 책과 중국CCTV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15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해양 강대국의 출현과 쇠락, 또 다른 나라의 굴기가 연속되면서 크게 번창한 나라들의 시대상과 찬란하게 빛나는 그들의 업적이 아주 잘 만든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영국의 탄탄한 민주주의와 산업혁명,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화려한 예술문화,1·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미국으로 패권이 옮겨지는 과정 등을 보면서 대국으로 굴기하는 데 필요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결론을 보면, 중국이 21세기에 또다시 대국으로 굴기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듯하여 뒷맛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국으로 굴기하기 위한 필요한 조건-`훌륭한 지도자`, `효율적인 정부`, `국민의 도전의식`, `글로벌 경제체제`, `창조적 사고`-들을 확인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또한, 이 모든 조건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서 과연 우리 대한민국도 굴기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본 적이 있었다.

대전에 대덕연구단지가 자리 잡은 지 벌써 4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의 과학기술은 많은 발전을 거듭했으며, IT분야를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선두에 선 기술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나라의 부를 창출하고 기술선진국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것 또한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기술사업화의 기치를 내걸고 공공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특구본부가 앞장서고 있다.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벤처창업과 기술이전을 전제로 하는 사업화 자금지원을 통해 특구 내에 혁신클러스터(기업군)가 형성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로 굴기하는 기업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대국굴기의 조건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기업가`, `효율적인 지원`, `기술자의 도전의식`, `글로벌 경쟁`과 `창조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나의 소망은 대덕특구가 기업가의 도전정신과 창조적 사고가 꽃피울 수 있는 있는 토양이 되어 `기술사업화`라는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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