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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속 미술여행]백자 달항아리

2012-01-03기사 편집 2012-01-02 21: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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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의 단절이 빚어낸 순백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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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白瓷)는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잿물(유약)을 씌워서 구워 만든 자기이다. 백자 달항아리(공식 이름은 白磁大壺·조선시대 후기·높이 41.2cm·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조선 백자의 정수로 꼽는 이유는 다른 나라 도자기에서는 볼 수 없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한 형태미에 있다.

보름달을 닮아 '달항아리'라 불리며 조선 시대 후기에 널리 유행했던 자기이다. 제작은 왕실의 식재료 및 연회를 맡았던 관청 사옹원의 경기 광주분원에서 왕실을 위한 백자 달항아리를 만든 것이 전부다. 현재 높이 44-47cm의 좀 더 큰 자기 몇 점이 남아 있다.

이처럼 큰 도자기는 물레로 한 번에 빚을 수 없기 때문에 아래 위 두 부분을 따로 만든 다음, 가운데를 붙여야 했다. 그래서 그 모양이 약간 고르지 못하고, 위아래가 정확히 대칭이 아니다. 자기 안쪽에서 보면 위아래 부분을 붙인 이음매를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형태의 도자기들에 비해 굽과 주둥이가 비교적 높고, 지름의 높이가 거의 1대1 비례를 이루며 바깥쪽으로 약간 벌어져 있다.

색깔은 흐린 유백색이며, 유약이 비교적 두껍게 발라져 있다. 균일한 색조가 아니라 비균질적인 농담의 백색을 띈다. 가마에서 구울 때 생긴 불순물이나 기포의 흔적, 미세한 구멍 등이 그 표면에 남아 있다. 도자기 표면의 자잘한 선들이 자연미를 돋보이게 한다. 그 당시 중국을 비롯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백자대호 같은 둥근 그릇은 만들지 못했다.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적 미의 상징으로 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부잣집 맏며느리의 후덕함, 눈처럼 흰(雪白) 빛깔은 청렴을 지향하던 사대부의 이상과도 부합한다. 달처럼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조선 백자의 미는 이론을 초월한 백의(白衣)의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또 미국 현대미술가 엘스워스 켈리는 달항아리의 선에 사로잡혀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했으며, 영국의 대표적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는 달항아리를 사가며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현 대영박물관 한국실 전시).

이것의 예술성은 세계시장과 소통하지 못한 단절에서 비롯된 것 같다.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학자와 문인들은 달항아리에 대한 감상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날렵한 대칭과 깔끔한 몸체의 중국 일본 도자 미학에 익숙한 탓에 인공적 가공을 피하고 자연미를 존중한 달항아리의 미를 절실히 느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시골 장터에 모인 아낙네들의 흰옷 입은 군상이 생각난다던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회고대로 달항아리는 국권을 찾은 뒤 민족의 타고난 본성과 문화에 대한 자각 덕분에 재조명된 셈이다.

한 시대의 문화가 그렇듯 도자기 또한 그 시대 사람들의 타고난 마음씨를 반영한다. 넉넉한 이 달항아리에서 조선인의 자연친화적인 심성과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고 스스로 넉넉함을 느끼는 것을 생활 철학으로 삼은 당시 사람들의 바람을 엿볼 수 있다.

미(美)란 하나의 신비로서,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없는 생각이다. 한국적 미는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산물이자 편안한 마음의 상태와 같다. 즉 마음에 어떠한 충동을 받아도 움직임이 없이 꾸밈없는 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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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현광덕 미술교육가·조각가·대전 와동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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