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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북한, 우왕좌왕 남한

2011-12-24기사 편집 2011-12-23 20: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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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북한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 사망이 발표된 지난 19일 하루 동안 이에 대한 어떠한 사전 정보도 인지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씁쓸한 웃음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막상 김 위원장이 사망하고 보니 어떤 이들의 희망과는 달리 지금 당장 북한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나와 앞다투어 김정은의 단지 28살이라는 나이와 2년 남짓한 짧은 후계수업 기간을 내세워가며 권력 승계의 불안과 이에 따른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 죽고 난 후 한 북한 관련 교수가 5년 내에 북한이라는 국가가 지구상의 지도에 존재한다면 교수직을 그만두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마치 그 당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유혹했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 주석 사망 이후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우리는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우를 범했다. 내버려두면 스스로 망할 것이라고 믿고 우리 스스로 벽을 쌓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당시 미국은 제네바합의 이행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오히려 북한과 등을 돌리고 남북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벽은 오히려 북한이 내부에만 전력하여 당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할 수 있었던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유례없는 3대 세습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방중 오보에 이어 이번에도 여지없이 보여준 한없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가 지금 과연 김정은의 정치 기반을 이야기하고, 집단지도체제니 권력투쟁을 이렇게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금 북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느 누구도 김정은을 대신할 수 없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에서는 이미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이해관계와 계산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국가도 김정은의 승계를 받아들이고, 안정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도 일단 김정은 체제를 3대 세습이라는 도덕이나 규범과는 구분하여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과 안정을 대비함이 마땅하다.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지금의 한반도 주변 정세는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더욱 증대되었지만 실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분명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의 호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동북아 안보판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상위에 미·중관계가 있고, 그 아래 북·미관계와 북·중관계, 그리고 가장 최하위에 남북관계가 있다는 점은 무척 안타깝다.

다행히 2012년은 한국을 비롯하여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권력교체기이다. 교체기는 정책적 공백상태가 존재하겠지만 지금의 판을 다시금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예상치 못한 김 위원장 사망으로 인해 그 시작점이 북한에서 앞당겨 발화되었다. 우리는 지금이 남북문제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 남과 북이 함께 한반도 문제의 진정한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슬기로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가 중국과의 신뢰와 소통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시기상조일 수도 있지만 김정은의 방중시기와 형식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단시간 내에 전격적으로 방중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섣부른 방중은 사대주의라는 오해를 사고 중국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에서 조문과는 별도로 고위인사가 먼저 방문해 김정은을 초대하고 시간을 두고 이에 대한 답방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정은은 당분간 북한 내부 안정을 위해 보수적 안정 기조를 선택하고 자신의 입지가 완벽하게 굳어진 이후 진정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으로 중국을 향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사망했다. 이제 와서 사망 사실을 누가 조금 먼저 알았느니, 기차 안에서 죽은 것이 맞느니 하는 가십거리적 논쟁은 불필요하다. 이는 마치 김 위원장 사망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이들의 궁색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가 여전히 자기소모적 책임 공방과 변명에만 얽매여 있는다면 후세들은 지금의 순간을 역사책에 주변 강대국들 속에서 아픔을 겪어야 했던 구한말과 1945년과 함께 또 한 번의 가슴 아픈 순간으로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정일의 생명 시계는 멈추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통일 시계마저 같이 멎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과 북이 함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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