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진 원장 공부의 주인공이 되자]둔산주인공공부습관트레이닝센터장

"행동은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행동은 갈등을 낳는다.

관계에 대한 이해는 궁극적으로 그 어떤 행동계획보다 중요하다"

-J. 크리슈나무르티

생각해 보면 과거의 부모 세대들은 요즘 부모들과 달리 능력과 무관하게 부모역할에 대해 더 자신감이 있었다고 본다. 어떤 형태로든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따르도록 하는 일이 그리 힘겨운 일들은 아니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아이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지금처럼 자녀들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일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기력해진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간청하거나 구워삶고, 매수하고, 보상하거나 벌을 준다. 그러다가 우리의 무력함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물러서곤 한다. 이전 세대보다 아이 양육이나 부모교육서가 넘쳐나는 환경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맞닥드린 이런 상황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과거나 현재도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자 하는 의도는 같은데 무엇이 문제일까?

발달학자들은 이것을 `애착(attachment)`관계의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 아이가 어른에게 마음을 열고 부모 역할을 허락하려면, 아이가 어른에게 능동적인 애착을 가지고 그 어른과 접촉하고 가까이 지내는 것을 원해야만 한다. 초기에 이런 애착욕구는 상당히 육체적이어서 아기는 말 그대로 부모에게 붙어 있고 안겨 있어야만 한다. 순리대로라면 이런 애착은 정서적인 친밀함으로 진화해가면서 마침내 심리적인 친밀함으로 발전된다. 이런 관계가 부족한 이이들에게 부모 역할을 하기란 매우 어렵다. 가르치는 일조차 힘들어진다. 애착관계만이 양육의 적절한 맥락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즉 부모 역할의 비밀은 부모가 이이에게 무엇을 하는지가 아닌, 아이에게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에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부모와의 접촉과 친밀감을 원하면 부모는 양육자로서, 위안자로서, 인도자로서, 모범으로서, 교사로서 혹은 코치로서의 모든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든 현재든 아이들은 변하지 않았다. 의존적이지 않은 것도 더 반항적인 것도 아닌, 변한 것은 아이들을 키우는 문화다. 우리는 부모에 대한 아이의 애착이 더 이상 문화적, 사회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과거 전통 방식은 구성원 모두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기반이 잘 준비되어 있었던 반면 현대사회는 그 기반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모든 것들이 개별화 되면서 어느 면으로 보면 부모의 역할 무게감이 더 증가되었다는 점이다. 경제적 측면이 강조되는 현대사회구조는 아이들이 어른의 중요성을 느끼기도 전에 보육시설이나 유치원을 거치게 된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어른보다는 또래와의 애착관계의 비중을 높여가는 환경을 제공받게 된다는 점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부모보다는 친구를 더 선호하며 애착의 뿌리를 부모보다 또래에게 더 두려는 아이들의 행동이 아이들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 역할로부터 비껴난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좀더 쉽게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시점에서 우리 아이와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을까? 애착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하며 성장과정에 놓여있다. 건강한 어른이 나침반 방위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또래에게서는 그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방향을 정해줄 자격이 있기는커녕, 현실적인 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방향조차 찾을 능력이 없다. 또래들은 우리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고 부모의 역할을 다시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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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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