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언어교실>

유 한림은 두(杜) 부인 모자를 집으로 초청했다. 큰 잔치를 열어 전별하려는 것이었다. 두 부인은 그 자리에 사씨가 없는 것을 보고는 ㉠ 온종일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마침내 한림에게 말했다.

"오라버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로 조카님을 의지해 지내왔네. 이제 만 리 먼 작별을 앞두고 내가 한 마디 부탁을 하려고 하네."

유 한림은 무릎을 꿇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다른 일이 아니라 바로 사씨 문제라네. 사씨는 오라버니께서 아끼던 사람으로 성품이 본래 근실하고 신중하네. 그에게 죄과가 없으리라는 것은 백 번이라도 보장할 수 있지. 내가 떠난 후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절대 그대로 믿지 말게. 설혹 그의 잘못을 눈으로 직접 보았더라도 반드시 내게 편지를 보내 의논해 주게. ㉡ 부디 가볍게 처리하지 말게나."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두 부인이 이어서 시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부인은 어디 계시냐? 내 직접 가 보아야겠다."

시비는 두 부인을 모시고 사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사씨는 누추한 방에 거적을 깔고 있어 보기에도 처참했다. 나무 비녀와 베치마에 다북쑥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데, ㉢ 몸은 초췌하여 의복도 이기지 못할 듯했다.

사씨는 두 부인을 맞아 절을 올린 후 말했다.

"숙숙*께서 영귀하여 멀리 떠나시지요. 그러나 돌아보건대 저는 상복을 입은 사람이고 또한 씻을 수 없는 죄명을 지고 있어, 감히 뜰에 나가 경하 드리며 떠나시는 길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집에 오셨다는 말을 들었지만 또한 나가서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 이생에서는 다시 존안을 대할 날이 없을 듯 하여 무궁한 한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부인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셨습니다."

"오라버니께서 임종하실 때 한림을 내게 부탁하셨지.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네. 내가 조카를 잘 인도하지 못한 탓에, 자네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어. 모두 내 허물일세. 그런데 ⓐ 내가 몇 해 전에 자네에게 했던 말을 혹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가?"

사씨는 다시 절을 하고 대답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찌 잊을 날이 있겠습니까? 제가 눈은 있으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어찌 감히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중략부분의줄거리]두 부인이 떠난 뒤, 사씨는 또다시 교씨의 흉계에 빠진다. 교씨는 울면서 사씨를 모함한다.

마침내 한림은 화를 벌컥 냈다.

"투부*가 처음에 저주를 했을 때, 나는 부부의 정의를 생각

하여 차마 적발할 수가 없었지. 그 후 신성현에서 더러운 행실을 한 단서가 이미 드러났을 때에도 죄를 묻지 않았어. 지금 또 이렇게 세상에 보기 드문 흉악한 짓을 하다니……. 이 사람을 집안에 그대로 둔다면 조상께서 제사를 흠향하지 않으시고, 자손도 완전히 끊어질 거야."

한림은 교씨를 위로하였다.

"오늘은 이미 저물었네. 날이 밝으면 일가들을 모아 사당에 고한 후에 투부를 내칠 것이네. 그리고 자네를 부인으로 삼을 것이야. 쓸데없이 슬퍼하지 말게. 꽃 같은 얼굴만 상하겠네."

교씨는 눈물을 거두며 대답했다.

"그같이 조치하시다니……. 이제 첩의 원한이 거의 풀렸습니다. 하지만 ⓑ 부인의 자리를 첩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한림은 즉시 일가들에게 통지하여 아침에 모두 사당 아래로 모이게 했다.

아아! 유 소사는 지하에서 일어날 수 없고 두 부인도 만 리나 멀리 떠났으니, 누가 한림의 뜻을 돌릴 수 있겠는가?

여러 시비들이 달려가 사씨에게 그 전말을 고하고 통곡하였다.

-김만중, [사씨남정기] 중-

* 숙숙: 두 부인의 아들을 가리킴.

* 투부: 질투심이 많은 여자. 사씨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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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사씨가 곤경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②㉡:사씨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가 반영되어 있다.

③㉢:낡고 해진 옷을 입고 있는 사씨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④㉣:자신의 처지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사씨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⑤㉤:잘못된 상황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씨의 태도를 드러내

고 있다.

[문제읽기를 통해] 각각의 답지를 읽고 지문 속에서 그 문맥적 의미의 근거를 찾아보아야 한다.

[지문읽기와 문제풀이를 통해] 정답은 ③번이다. ㉢을 보면 '몸이 초췌하다'라고 했는데 ③번 답지는 '옷이 낡았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헷갈리기 쉬운 문제이므로 꼼꼼하게 접근을 해야 하는 문제이다.

2. 위 글로 보아 ⓐ의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항상 자신의 말을 스스로 지키며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도

록 하게. 언행이 일치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②새로 들어온 사람을 잘 대해 주게. 그 사람이 우리 가문에

처음 들어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잘 모를 것이네.

③사람이 어떤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네. 그러니 자네는 다

른 사람 돌아보지 말고 자네의 맡은 바 소임에만 충실하도록

하게.

④장부가 원한다 하더라도 만류할 줄 알아야 하네. 열 길 물속

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사람을 잘

살펴보아야 하네.

⑤장부의 뜻에 순종해야만 집안이 화목하고 가문이 번성할 수

있네. 사사로이 자네의 감정 을 앞세워 장부의 심기를 불편

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야.

[문제읽기를 통해] 답지의 주요 부분에 밑줄을 치면서 ⓐ의 앞뒤 부분에 신경을 써야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문읽기와 문제풀이를 통해] 정답은 ④번이다. ⓐ의 '자네에게 했던 말'은 그 뒷부분에 나오는데 사씨의 말 중 '제가 눈은 있으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라는 부분을 보면 추리할 수 있다. 즉 ⓐ의 내용은 '사람을 잘 알아보라는 말'임을 추측할 수 있는데 ④번 답지에 '사람을 잘 살펴보라'는 말이 나오므로 정답임을 확인할 수 있다.

3. 독자의 입장에서 ⓑ를 비판하는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표리부동(表裏不同)  ② 경거망동(輕擧妄動)

③ 호가호위(狐假虎威)  ④ 방약무인(傍若無人)

⑤ 감탄고토(甘呑苦吐)

[문제읽기를 통해] 고사 성어 문제는 항상 두 글자씩 나누어서 그 뜻을 생각해야 한다.

[지문읽기와 문제풀이를 통해] ⓑ의 윗부분, 즉 [중략부분의 줄거리]를 보면, '교씨는 울면서 사씨를 모함한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고도 ⓑ에서는 자신이 부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겉과 속이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즉, '표리부동한 인물'이므로 정답이 ①번이다. ②번의 뜻은 '경거(가볍게) 망동(행동한다)'이며 ③번은 '호가(여유가 빌림) 호위(호랑이의 위세를)' ④번은 '방약(방자하다) 무인(사람이 없는 것처럼)' ⑤번은 '감탄(달면 삼키고) 고토(쓰면 뱉는다)'의 뜻이다.

어휘력 tip

1. '느즈막하게 아침을 먹었다'가 맞아요?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었다'가 맞아요?

-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었다'가 맞습니다. 형용사인 '느지막하다'는 '시간이나 기한이 매우 늦다'의 뜻인데 '느즈막하다'와는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되는 단어입니다.

2. '구태여 그럴 필요 없다'가 맞아요? '구태어 그럴 필요 없다'가 맞아요?

- '구태여 그럴 필요 없다'가 맞습니다. 부사인 '구태여'는 부정하는 말과 어울려 쓰이거나 반문하는 문장에 쓰여 '일부러 애써'의 뜻을 가지고 있죠.

3. '그 친구를 조심하라고 귀띰해 주었다'가 맞아요? '그 친구를 조심하라고 귀띔해 주었다' 가 맞아요?

- '그 친구를 조심하라고 귀띔해 주었다'가 맞습니다. 역시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쉬운데 '귀띔'은 '상대편이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미리 슬그머니 일깨워 줌'의 뜻이죠. '귀+뜨이다+명사형어미 ~ㅁ'이 줄어 '귀뜨임'이 되고, 다시 줄어들어 '귀띔(귀가 뜨이게 되다)'이 되는 원리입니다.

본문작가와 작품해설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조선 인조와 숙종 때의 문신이며 소설가다.'구운몽(九雲夢)'은 그가 한문소설을 비판하고 참된 우리 문학은 국문소설이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쓴 소설이다. 구운몽은 김만중이 52세 때 쓴 것으로, 민씨(民氏)의 폐비설을 반대하다가 남해로 유배갔을 때 한양에 있는 노모(老母)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구운몽'의 주제는 역시 대승불교의 중심인 금강경의 '공(空)'에 있다. 공(空)은 표면적으로는 인생만사를 부정하는 데 있는 것 같지만 이면적으로는 인생만사를 역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구운몽'은 '금강경'이 소설화된 하나의 작품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귀족소설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 핵심이 무엇이든 귀족적인 사고에 입각해서 문제가 제기된다.'구운몽'은 후대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옥루몽', '옥련몽(玉蓮夢)' 등은 이 구운몽을 토대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구운몽은 저작 동기야 어떠하든지 이전에 있었던 다른 소설에 비해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서 한국 고대소설 문학사에 있어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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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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