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문화르네상스- 한기복 전통타악그룹 '굿' 대표 인터뷰

 장구 연주 시범을 보이는 한기복 대표.
장구 연주 시범을 보이는 한기복 대표.
"덩~덩~ 덩더쿵" 몸이 절로 들썩여지는 장구 소리가 대전 대흥동 어느 건물에서 흘러나온다. 소리의 진원지는 전통타악그룹 '굿' 대표 한기복(44)씨. 그는 대전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소문난 장구꾼이다.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구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장구 잘 치는 사람은 많지만 옛 시대 장구를 연구하고, 고증해내기까지 하는 사람은 전국 유일무이하다.

한씨는 서산 농고 풍물반 시절부터 장구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대전 웃다리농악 기능보유자 송순갑 선생의 마지막 제자이기도 한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장구 너는 뭐고, 너를 치는 나는 누구냐?"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한다. 장구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장단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초등학생까지도 장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떻게 연주되어 왔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국악 어느 장르에서나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우리 악기인데 부끄러운 일이죠. 옛날이야 천민의 악기라고 멸시 했지만 이 시대에는 장구에 대한 충분한 정의를 내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구에 대한 기록이 남겨진 문헌은 거의 없다. 조선시대 악서(樂書) '악학궤범'에 그나마 제작방법이나 치는 방식이 상세하게 나와 있지만 잘못된 해석과 풀이가 난무한 실정이다.

한씨는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모았다. 중국, 일본, 동남아 문헌은 거의 다 뒤졌고, 고구려 벽화, 범종에 그려진 장구의 모습을 분석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복원해낸 것이 '고려 도자기 장구'다. 울림통이 나무가 아니라 도자기로 만들어져 소리가 높고 가늘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는 허리가 가느다란 북이라 해서 '세요고(細腰鼓)'라 불렀습니다.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 '장고(杖鼓)'라고 부르게 됐지요. 요고가 장구로 변한 까닭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묻고 다녀도 확실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혼자 공부하다시피 해서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에 대해 석사 논문을 쓰고 재현했습니다."

지난 2009년에는 경기 하남의 이성산성에서 발굴된 세요고 원형을 바탕으로 삼국시대 요고를 복원하기도 했다. 한씨는 이렇게 복원한 옛 시대 장구들로 매년 정기 연주회를 펼치고 있다.

그 당시 악보도 없고, 연주형태도 명확치 않지만 오늘날의 장단을 연주하면서 옛 소리를 추정해 보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우리 소리의 뿌리와 본질을 들려주고자 함이다.

오는 12월 14일에는 대전 연정국악문화회관에서 전통타악그룹 '굿'의 정기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

"한국 사람이 국악을 잘 모르고, 특정인들만 국악을 하는 것이란 인식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밥 먹듯이 쓰는 한글을 잃는 것과 같은 경우예요. 조상들의 사상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우리 음악을 초등학교 때부터 서양 음악의 잣대로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사람들이 국악에 대해 제대로 알리가 없죠."

한씨는 국악을 서양식 음악에 빗대어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선 자체가 잘못됐다며 꼬집었다.

"국악의 악보 '정간보'는 박자를 상징하는 네모 칸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선율을 넣습니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넣는 서양 음악은 선율 위에 리듬을 만들어 넣는 식이죠. 음악을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단 말입니다. 박자를 일정한 템포에 따라 마디로 나누는 서양 음악과 달리 국악의 박은 공간을 갖고 있습니다. 형태는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깊이가 묻어나지요."

그는 장구를 연주하면서도 옛 역사를 연구하고 고증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다. 단순히 옛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통을 제대로 이해해서 새롭게 진화해가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다.

"음악은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연주자라면 그냥 연주하는 것보다 그 속에 뭘 담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면서 올바른 소리를 내는 음악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정민아 기자 mina@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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