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라 시인

필자의 집 근처에 대형 예식장이 있다. 주말이면 예식장 주차장을 다 채우고도 넘치는 차량들이 근처 주택가의 골목까지 주차를 감행하여 보행에 불편을 겪을 정도이다. 자신의 반려를 찾아 새로운 삶은 시작하는 선남선녀들에게 축복을 보내면서 이 가을 얼마나 많은 `명품(名品)`이 혼수라는 명목으로 소비될 것인가 생각해 본다.

 `사랑의 기술`이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에리히 프롬은 또 다른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현대의 시장지향성(marketing orientation)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대중들을 대상으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 받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차, 헤어스타일, 가방과 옷 등의 소품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소유한 `소품`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현대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위와 같이 외적인 요소로 상대를 평가하는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욕(當然慾)이라고 하겠지만 이러한 풍토가 사회에 만연하여 바야흐로 `명품` 전성시대가 되고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혼사에도 이 `명품` 열풍은 예외가 아니어서 신랑 신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예단에까지 `명품`의 목록이 버젓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명품`의 가격이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이라는 게 문제다. 자동차까지야 그만두고라도 가방 하나에 백, 천 의 단위가 붙고 그런 `명품`을 예물로 받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혼사처럼 여기는 시류를 어찌할 것인가?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는 경제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혹시 모르겠으나 그 또한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러한 소비 형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시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유행이나 집착이 경제적 준비가 전혀 없는 젊은이들과 일부 저소득층의 허영심에 불을 지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대저, 명품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아주 뛰어난 물건이면서 널리 알려졌거나 예술작품으로서 높은 품질을 지닌 제품이라고 사전은 적고 있다. 그렇다면 명품에 대한 동경을 품을 명분은 충분하다. 품질을 보증 받은 귀한 물건을 소지함으로써 선망의 눈길을 받게 되고 이는 곧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를 수반하므로 자신의 신분이 상승한 듯한 환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명품에 탐닉하는 이유가 꼭 그뿐일까? 그렇다면 그 환상에 지불하는 현실적인 대가가 너무 엄청나지 않은가?

 어느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13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전체의 27.5%가 명품을 사기 위해 알바비를 모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도 어려우면 가짜 명품이라도 구매한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명품소비에 대한 생각을 물어 보면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많이 사고 싶다`가 34.2%였다고 한다.

 자신을 과시하고 돋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명품소지를 택하는 젊은이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을 사치와 과소비로 내몰고 있는 사회를 진단해야 한다. 사회가 지나친 천민자본주의로 흘러서 우리 고유의 전통과 가치를 살리지 못하고, 세계시장에서는 우수한 품질과 정교함으로 호평 받는 다수의 우리 상품조차도 정작 국내에서는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유행은 있고 또 명품은 존재한다. 그러나 명품은 유행의 한 유형일 뿐이다. 그것이 맹목적인 사회적 전이현상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

 마치 고여 있는 물에 종이가 젖듯이 모르는 사이에 만연해 있는 명품열풍은 우리들 스스로가 만든 허상에 다름 아니다. 남보다 조금 더 우월해 보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우월해 보이는 것이지 우월한 것은 아니다.

 `장자`를 읽다 보면 `두어라, 그 나무도 다 까닭이 있어서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렇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명품도 사람이 만든 것이고 언젠가는 버려질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던 근검, 절약, 성실과 같은 아름다운 덕목이 유행과 명품이라는 소비적 가치에 묻혀서야 되겠는가.

 세상 누구라도 스스로가 무언가를 위해 태어났고 살아가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고 외적인 치장의 명품이 아닌 내적인 보배를 갖춘 명품이 되어 보자.

 이 가을 새로이 출발하는 모든 신혼부부들이 돈 없이도, 허영과 과욕 없이도 누릴 수 있는 `명품가정` 을 이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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