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충남역사문화硏 실장 “공주 수촌리, 중앙과 밀접”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시대 공주 수촌리 지역에 거주하던 세력이 백제중앙권력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촌리 고분군은 무령왕릉 이후 백제와 관련한 최대 발굴성과가 될 것입니다."

 이훈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은 2일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일원 발굴현장 설명회자리에서 이같이 밝히며 수촌리 고분군의 발굴 의의를 설명했다.

 지난 6월30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약 6개월간의 일정으로 발굴조사를 진행 중인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조사팀은 백제시대 무덤(7-10호) 4기와 청동기시대 구덩이 5기, 초기삼국시대 구덩이 9기 등 총 23기의 유구를 발굴했다.

 백제시대 무덤은 석곽묘 2기(7·8호분)와 석실묘 1기(10호분), 토광묘 1기(9호분)다. 특히 이 가운데 8호분에서는 금동신발 1쌍을 비롯해 옻칠된 단검, 곡옥(둥근 옥), 토기류가 나왔고, 7호분에서는 환두대도를 비롯해 재갈, 등자 등 마구류가 발견돼 큰 관심을 모았다. 또 대호(큰항아리)와 광구호(입이 큰 항아리), 단경소호(목짧은 항아리), 고배(굽은다리 접시) 등의 도자기류도 다수 발굴됐다.

 이 실장은 "당시 최상위층의 위세품인 금동신발이 지난 2003년에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발굴됐다는 것은 백제중앙권력(왕)이 수촌리 일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이는 곧 수촌리 일대에 강력한 지방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촌리 고분들에선 하나같이 등자와 재갈 등 마구류가 모두 발견됐다"며 "이를 통해 수촌리 지배층이 남녀를 불문하고 말을 타고 다녔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사팀은 7-8호분이 부부의 묘지일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10호분에서는 논에 물길을 내는 `살포`가 발굴됐는데, 이를 토대로 조사팀은 10호분 무덤 주인이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컸던 인물이었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이 실장은 "4구의 백제분묘가 추가로 발굴됨으로써 수촌리 일대가 4-5세기를 거치며 마한의 전통을 버리고 백제중앙묘제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파악할 수 있다"며 "이 지역이 백제화되는 과정을 묘제를 통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수촌리 유적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의 발굴조사에서 백제무덤 6기와 금동관 2점, 금동신발 3쌍, 금동허리띠 2점, 환두대도 3점 등 4-5세기 백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돼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발굴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박병준 기자 joonzx@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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