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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

2011-10-11기사 편집 2011-10-1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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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이웃 인권 위해 봉사 위선 없는 진정성 가져야

“눈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요즈음처럼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노라면 저절로 이 같은 아름다운 시구(詩句)가 입가를 스친다. 미당(未堂)의 시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인 본심으로 느끼고 어루만지고 그리워하고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어지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움인 것이라 여겨진다. 꽃이 그러하고 자연경관이 그러하고 그리운 사람이 그러하다.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행동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그런데 요즈음의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 시장에 입후보한 박원순 이라는 사람이 설립한 아름다운 재단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결코 아름답게만 느껴지지가 않는다.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정점(頂點)으로 참여연대-아름다운 재단-아름다운 가게-희망제작소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거미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민주당의 박영선의원은 “박원순이는 한 손에 채찍을 들고 한손으로는 후원금을 받았다”고 비판하였다. 참여연대가 기업에 채찍을 들면 아름다운 재단으로 돈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그러나 박원순은 “참여연대가 기업을 비판한 것과 그 기업이 아름다운 재단을 후원한 것 사이에 무슨 인과(因果) 관계가 있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후보를 사퇴한 사람에게 돈 2억을 준 것이 후보사퇴와 무슨 인과 관계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곽노현 서울 교육감이 한 말과 어쩌면 그렇게도 짜 맞춘 것처럼 똑같은지 모를 일이다.

어떤 언론에서는 한 푼이라도 이익이 남는 곳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니는 외국계 펀드회사가 1억이 넘는 돈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한 것이 “그 단체의 활동에 감동해서인지 아니면 그의 입을 막으려고 주었는지는 상식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꼬집고 나섰다. 아름다운 재단이 결코 아름다운 재단이 아닐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안다. 소액대출운동의 창시자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인 빈곤퇴치운동가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박사 같은 사람이 그런 분이다. 신용대출은 곧 인권이라는 신념으로 그는 마이크로 크레딧(microcredit)이라는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를 창안하여 빈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자신의 돈 27달라로 시작한 운동이 30년만인 2006년 현재 지점이 총 2185개나 되는 거대한 그라민 은행으로 발전하였다. 무담보 소액대출을 받은 600만 명의 대출자 중 60%가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의 길로 들어섰고 이들의 예금으로 대출금은 충당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름다운 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재벌로부터 돈을 거두지도 않았고 자신의 가족을 동원하여 어떤 이득을 얻으려 꾀해 본 적도 없다. 희망버스를 운행하지도 않았다. 오직 은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희망제작소 역할만을 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이 곧 인권이라는 인식으로 소액대출운동을 벌린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요 아름다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가 운영하는 은행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은행이다. 그에게는 위선이란 없었다. 아름다움은 이런 거짓 없는 진정성 속에서 피는 한 떨기 꽃이요 빛이다. 그러기에 희망은 아름다운 빛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의 한국계인 학생 윌 김(한국명 김대경)에 얽힌 얘기도 마찬가지다. 부자 나라 미국에도 가난한 사람은 있다. 창업 아이디어는 있지만 돈이 없어 일어서지 못하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그는 100달러 내지는 1000달러 정도를 대출해 주는 1만달러 정도의 작은 규모의 기금(基金)을 운영하고 있다. 그 기금의 이름에도 아름다운 기금이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다.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료 학생의 비행(非行)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해 본 적도 없다. 그 기금은 자신이 학생들을 상대로 피구대회 같은 작은 게임을 통해 모금해서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선행이었으면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까지도 윌 김이라는 이름까지 거명하면서 칭찬의 연설을 하였을까? 이런 사람들이 우리들의 희망이다. 희망버스는 이런 희망을 싣고 다녀야 할 버스다. 폭력을 싣고 다니는 버스가 어떻게 희망버스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누구도 아름다움과 희망을 상품화하여 그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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