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 종사자 열 명 중 여덟 명은 이명박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역대 정부의 과학기술정책보다 나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최근 13개 출연연 종사자 4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역대 정부와 비교할 때 현 정부의 전반적인 과학기술정책 운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9.9%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잘못하고 있다’(48.1%)거나 ‘아주 잘못하고 있다’(31.8%)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연구현장 의견 수렴 부족’(38.5%), ‘과학기술정책 전략 부재’(32.2%), ‘과학기술 정책의 정치적 이용’(26.1%) 등을 꼽았다. 과학기술자들이 설문조사에서 이러한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의 견해는 완전히 무시된 채 연구소와 대학 통합, 50~60개 강소형 연구소로 개편 등을 추진하다 보니 과학기술자들이 공감할 리 만무한 것이다.

연구소장이나 연구소계의 책임자가 되려면 정치권에 줄대기 없이는 안 된다는 게 이제 비밀이 아닐 정도이다. 현재의 기관장 선출제도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71.5%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은 오히려 예상보다 적다는 판단이다.

5년 단위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는 과학기술정책, 출연연 개편안을 어김없이 새로 내놓았다. 이러한 현상이 매우 나쁜 것은 정작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당사자인 과학기술자들의 의견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잡기 힘든 과정을 통해 발표된 과학기술정책들은 출연연을 아래 위로 흔들어놓기 일쑤였다. 정책에 대한 공감은커녕 정책의 철학, 비전, 전략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다반사였다. 더구나 MB정부는 21세기가 ‘과학기술시대’라는 흐름을 무시한 채 과학기술부를 폐지하는 무리수까지 뒀다.

출연연 과학기술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대기업이나 대학, 선진국 연구기관으로 떠나버리고 ‘과학기술계 홀대’라는 말은 보통명사화 됐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아지리라고 기대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설문조사를 보면 과학기술정책과 과학기술계가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차라리 예전의 과학기술정책 그대로 두고 집행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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