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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수능 - 현대소설]

소설을 흔히 ‘현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허구’라고 말한다. 있음직한 현실을 재미있게 또는 감동적으로 꾸며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모색하며 나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나아가 한 편의 감동적인 소설은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그러나 ‘소설 읽기’와 ‘소설 문제 풀이’는 그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막연히 소설책을 읽고 흥미나 감동을 전달 받는 방식으로는 수능의 ‘소설 문제 풀이’를 잘 해낼 수가 없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소설 읽기’가 ‘저자(또는 서술자)와 독자와의 만남’이라면 ‘소설 문제 풀이’는 ‘출제자와 수험생의 만남’이라는 사실이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긴 소설과는 달리 ‘소설 문제 풀이’는 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수험생의 지식 활용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즉, 현대시나 고전시가와 마찬가지로 소설에도 소설만의 독특한 풀이 방식이 있어야 하는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설 문제 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물의 파악’이다. 소설 지문 속 등장인물이 누구이고 그 중 주요 인물은 누구이며, 보조 인물은 누구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주요 인물이 겪는 ‘사건’에 주목해야 한다. 발췌된 지문 속에는 한 두 건의 크고 작은 ‘사건’이 존재한다. 그 ‘사건’에 대처하는 주요 인물의 태도나 심리는 소설 문제의 단골 메뉴이다. 그래서 소설 지문을 읽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먼저 ‘제목’을 보고 소설의 내용을 추리해야 한다. 흔히, 필자는 그 소설에서 가장 상징성이 강한 소재이거나 주요 인물의 이름 등을 ‘제목’으로 많이 사용한다. 둘째, 인물이 나올 때 마다 동그라미(○)를 표시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주인공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셋째, 주요 사건을 찾아내서 밑줄을 쳐야 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중심 사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전체 지문 속에서 그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추리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다 거친 후 소설 문제를 풀이할 때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본적 감상을 해 놓는 것이 좋다. 먼저, ① 주인공을 찾는다. ②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처지를 파악한다. (특히, 소설은 사회·문화적 배경, 시대적 현실이 중요할 때가 많다.) ③ 상황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태도와 정서, 심리 그리고 성격을 찾는다. ④ 그런 다음, ‘갈등’을 찾는다. 갈등은 흔히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이 있는데, 외적 갈등으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 개인과 운명과의 갈등이 있으며 내적 갈등으로는 한 개인 내면의 갈등이 있다. ⑤ 마지막으로 표현 방식을 찾는다. 직접 제시인지 간접 제시인지, 복선과 암시는 있는지, 문체는 어떤지, 시점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다음은 2007학년도 수능에 나온 김유정의 ‘만무방’이라는 소설이다. 제목인 ‘만무방’은 ‘막돼먹은 인간’이라는 뜻으로 지문 속에서 ‘응칠이’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자, 이제 소설 지문을 읽으면서 인물에 동그라미(○), 주요 사건에 밑줄(__)을 치며 파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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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멀리 아우를 방문함은 생활이 궁하여 근대러 왔다거나 혹은 일을 해 보러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혈족이라곤 단 하나의 동생이요, 또한 오래 못 본지라 때 없이 그리웠다. 그래 모처럼 찾아온 것이 뜻밖에 덜컥 일을 만났다.

지금까지 논의 벼가 서 있다면 그것은 성한 사람의 짓이라 안 할 것이다.

응오는 응고개 논의 벼를 여태 베지 않았다. 물론 응오가 베어야 할 것이나, 누가 듣든지 그 형 응칠이를 먼저 의심하리라. 그럼 여기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응칠이가 혼자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응오는 진실한 농군이었다. 나이 서른하나로 무던히 철났다 하고 동리에서 쳐주는 모범 청년이었다. 그런데 벼를 베지 않는다. 남은 다들 거둬들였고 털기까지 하련만 그는 ㉠벨 생각조차 않는 것이다. <중략>

캄캄하도록 털고 나서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색초를 제하고 보니 남은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 그것은 슬프다 하기보다 끝없이 부끄러웠다. 같이 털어 주던 동무들이 뻔히 보고 섰는데 빈 지게로 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건 진정 열적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 참다 못해 응오는 눈에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샛바람과 비에 벼는 깨깨 비틀렸다. 이놈을 가을하다간 먹을 게 남지 않음은 물론이요 빚도 다 못 가릴 모양. 에라, 빌어먹을 거 너들끼리 캐다 먹든 말든 멋대로 하여라, 하고 내던져 두지 않을 수 없다. 벼를 거뒀다고 말만 나면 빚쟁이들은 우― 몰려들 거니깐.<중략>

이렇게 문제 중에 있는 벼인데 ㉢귀신의 놀음 같은 변괴가 생겼다. 다시 말하면 벼가 없어졌다. 그것도 병들어 쓰러진 쭉정이는 제쳐 놓고 무얼로 그랬는지 알장 이삭만 따 갔다. 그 면적으로 어림하면 아마 못 돼도 한 댓 말 가량은 될는지!

응칠이가 아침 일찍이 그 논께로 노닐자 이걸 발견하고 기가 막혔다. 누굴 성가시게 굴려고 그러는지. 산속에 파묻힌 논이라 아직은 본 사람이 없는 모양 같다. 하나 동리에 이 소문이 퍼지기만 하면 저는 어느 모로든 혐의를 받아 폐는 좋이 입어야 될 것이다. <중략>

한 식경쯤 지났을까, 도적은 다시 나타난다.

응칠이는 덤벼들어 우선 허리께를 내려조겼다. 어이쿠쿠, 쿠― 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이 소리에 귀가 번쩍 띄어서 그 고개를 들고 팔부터 벗겨 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시선을 치걷으며 그 자리에 우두망찰한다.

그것은 ㉣무서운 침묵이었다. 살뚱맞은 바람만 공중에서 북새를 논다.

“성님까지 이렇게 못살게 굴기유?” / 제법 눈을 부라리며 몸을 홱 돌린다. 그리고 느끼며 울음이 복받친다. 봇짐도 내버린 채, /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 하고 데퉁스러이 내뱉고는 비틀비틀 논 저쪽으로 없어진다.

형은 너무 ㉤꿈속 같아서 멍하니 섰을 뿐이다.

- 김유정, 「만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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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응칠이’와 ‘응오’가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주요 사건은 ‘멀쩡했던 벼가 사라진 사건’이며 벼를 훔친 도둑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논의 주인인 ‘응오’임을 알고, 당시의 농민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얼마나 심했던가를 고발한 소설임을 독자는 파악할 수 있다. 또, 외적 갈등(개인↔궁핍한 일제치하의 사회)을 보이고 있으며 서사(시간의 흐름)적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감상을 먼저 한 후 문제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보도록 하자.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며 서사를 전개하고 있다.

② 다양한 인물들의 경험을 삽화 형식으로 나열하고 있다.

③ 장황한 해설을 통해 작가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④ 인물의 외양 묘사를 통해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⑤ 회상을 통해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문제읽기를 통해 이 글의 서술상의 특징, 즉 어떻게 사건을 전개하고 있느냐를 알아야 한다.

지문 읽기와 근거 찾기를 통해 정답이 ①번임을 알 수 있다. ‘응오가 벼를 베지 않고’(행동) 그 이유로 ‘벼를 거둬도 빚쟁이들 다 줘야 하니까’(심리)를 들고 있다. 응칠이 역시 ‘자기가 도둑 혐의를 받을까봐’(심리), ‘도적에게 달려드는’(행동)을 보인다. 또한 ‘벼를 베지 않는다’→‘벼가 없어졌다’→‘한 식경 쯤 지났을까’의 표현을 통해 서사(시간의 흐름) 전개임을 알 수 있다.

2. ‘응칠’의 행동을 <보기>와 같이 정리하였다. <보기>를 토대로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 기>

ㄱ. 응칠이는 먼 곳에서 동생을 찾아온다.

ㄴ. 응칠이는 담판을 지으려고 지주를 만난다.

ㄷ. 응칠이는 지주의 뺨을 때린다.

ㄹ. 응칠이는 논에 가서 도적을 기다린다.

ㅁ. 응칠이는 도적을 잡기 위해 다짜고짜로 달려든다.

①ㄱ, ㄴ을 통해 동생을 생각하는 응칠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②ㄱ, ㄹ에서 응칠이가 동생을 찾아온 일이 도적과 관계됨을 알 수 있어.

③ㄴ, ㄷ, ㅁ을 통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응칠이의 성격을 알 수 있어.

④ㄴ, ㄹ을 통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응칠이의 의지를 볼 수 있어.

⑤ㄹ, ㅁ은 응칠이가 자신에게 미칠지 모를 혐의를 벗기 위해 한 행위일 수 있어.

문제읽기를 통해 ‘응칠’의 행동이라고 했으므로, 지문과 보기 모두 ‘응칠’의 심리, 태도, 성격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문 읽기와 근거 찾기를 통해 정답은 ②번이다. 왜냐하면 지문의 처음 부분에서 응칠이가 아우 응오를 찾아 온 이유가 도적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때없이 그리워서’ 찾아왔음을 밝히고 있다.

3.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진실한 농군’의 행위인 점에 비추어, 의도가 단순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② ㉡: 노동의 결과가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③ ㉢: 새로운 문제의 발생으로 사건이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예상된다.

④ ㉣: 싸움 중에 잠시 찾아온 침묵으로,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이 표현되어 있다.

⑤ ㉤: 뜻밖의 상황을 당해 당혹스러워 하는 인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읽기를 통해 각 ㉠~㉤의 앞 뒤 부분에 주목하여 잘못된 설명을 찾아야 한다. 지문 읽기와 근거 찾기를 통해 정답은 ④번이다. 왜냐하면 ㉣의 침묵은 상대방의 경계심 때문이 아니라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침묵이 흐른 것이다. ㉣의 바로 앞에 그 근거가 나타나 있다.

[어휘력 tip]

1. ‘설을 쇠다’가 맞아요? ‘설을 세다’가 맞아요?

‘쇠다’는 ‘명절이나 생일을 맞이해 지내다’의 뜻이 있으므로 ‘설을 쇠다’가 맞습니다. ‘세다’는 어떤 숫자를 헤아릴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죠.

2. ‘허구헌 날’이 맞아요? ‘허구한 날’이 맞아요?

‘허구한 날’이 맞습니다. ‘허구하다’는 ‘시간이 오래되다’의 뜻인데 ‘허구한 세월’이라는 표현이 있듯 ‘허구한 날’이 맞는 표현입니다.

3. ‘꽃봉오리’가 맞아요? ‘꽃봉우리’가 맞아요?

‘꽃봉오리’가 맞는 표현입니다. 흔히 ‘봉오리’는 ‘미처 피지 않은 꽃’을 일컫는 말이고, ‘봉우리’는 ‘산에서 뾰족하게 솟은 부분’을 말합니다. 그래서 ‘산봉우리’라고 말하는 거죠. 이제 봄이 가까이 왔으니 우리 모두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예쁜 ‘꽃봉오리’를 감상 해야겠죠?

<이상 언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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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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