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이학현 /2008년作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에서 홀로 독거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박노인. 추석이 다가오자 몇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도시에 살고 있는 하나 뿐인 아들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을 동네 노인정의 영감님들에게 감춰 보려하지만 그럴수록 떨어져 지내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감출길이 없다. 드디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한데, 도시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는 연락이 없고, 그저 TV에서 만이 온통 추석명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는 수 없이 답답한 마음에 먼저 아들에게 전화를 건 박노인에게 아들은 일에 지쳐 있는 듯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수화기 너머의 아버지를 대한다. 추석일정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물어보라는 아들의 말에 섭섭한 마음을 추스르며 며느리와 통화를 해보지만 이런저런 사정에 대한 핑계를 대더니 결국은 갈 수 없다는 말에 기분만이 상할 뿐이다. 박노인은 쓸쓸하고 쓰라린 마음에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그립다 못해 야속하다. 논밭 둔턱에 앉아 이런 박노인의 사정을 들어주던 이노인은 박노인에게 쪽지를 하나 건넨다. 그리고 추석 전날, 저녁이 되자 갑작스레 아들 가족이 반갑게 박노인을 찾아온다. 다음 날 아침, 정성스레 차례를 지내고 할머니 무덤으로 성묘를 간 박노인과 아들가족에 대한 진실이 마침내 성묘가 끝난 뒤 밝혀지게 되는데….

6·25 사변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전통적인 농경사회가 해체되고 급속한 이농현상으로 인해 도시화가 급진전되면서 대한민국의 농촌사회는 지금 심각한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청년이나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시골마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영화 속 박노인이나 이노인 처럼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둔 독거노인의 문제가 알게 모르게 심화되어 있는 것.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도시생활의 일상 속에 이를 모른 채 묻어두고 있다가 일년에 단한번 추석이라는 민족의 대명절 정도나 되어야 그나마 상기하는 정도가 됐다. 이마저도 도시의 치열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영화 속에 오로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박노인의 자식내외 처럼 방치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이제 껏 등뼈가 휘어지고 피부가 거죽이 될 정도로 농사를 지어 자식을 키운 전통적 농경세대의 지나간 주역인 시골의 노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을 제대로 된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그저 하염없이 처분만을 맡기며 남은 일생의 명절을 쥐죽은 듯,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숨죽여 지내다가 말없이 바람에 씻기듯 사라져 가야만 할까?

영화 ‘진짜가족’은 이 부분에서 뜻밖의 반전 아닌 반전을 준비한다. 바로 전화 한 통화와 일부 선입금으로 찾아와 주는 ‘대행가족’이라는 존재를 상상함으로써 말이다. 영화 속 박노인은 이 ‘대행가족’을 마치 오랫동안 살갑게 맞이했던 진짜가족 인양 전혀 망설임이나 어색함이 없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어느 새 진심으로 명절의 짧은 시간을 행복해 한다. 비록 성묘가 끝난 뒤 여전히 웃는 낯으로 잔금에 대한 입금처리를 이야기하는 며느리 역의 여인에게서 그 행복은 너무도 쉽게 걷혀 가지만 쓸쓸히 할머니의 차례를 치러냈어야 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박노인은 씁쓸함 속에서도 조금은 야릇한 미소를 무덤가의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며 얼굴에 살짝 띄우고 마는 것이다.

영화가 설정하고 의도했을 반전의 모티브인 ‘대행가족’의 존재가 영화 초반, 조금만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조금은 허술하게 짜여진 극전개 구성이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이러한 결점은 영화의 말미, 현실을 인정하고 아쉬우나마 그에 대한 강구책을 찾아 실행한 박노인의 아리송하게 옅은 미소가 포착되는 순간, 상당부분 상쇄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추석풍경을 잠시나마라도 한번 쯤은 되새겨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감독 프로필

이학현

- 목원대학교 영화학부 졸업

- 2008년 단편영화 <진짜가족>

2009 대전독립영화제 본선 경쟁

2010 CMB대전방송 <열린 미디어 세상> 방영

- 2008년 단편다큐멘터리 <그들이 사는 세상>

2010 대전독립영화제 본선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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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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