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중년 남녀, 유쾌한 사랑은 그렇게···

크게 터지는 한방은 없다. 어찌보면 밋밋하고, 극장문을 나설 때는 뭔가 허전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쓸쓸함을 맛본 중년 남녀가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한 걸음씩 내딛는 과정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면서 따뜻한 감성은 관객의 마음속에 서서히 스며든다.

영화 ‘로맨틱 크라운’은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래리 크라운’(톰 행크스)을 급습하면서 시작된다.

해군 취사병으로 20년간 복무한 주인공 ‘래리 크라운’은 퇴역 후 마트 관리직으로 몇 년 간 성실하게 일했지만 사측의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당한다. 래리가 해고된 이유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 실의에 빠진 래리는 친구의 충고로 집 근처 전문대(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하고, 학장의 권유로 처음 등록한 스피치 수업에서 까칠한 여교수 ‘테이노’(줄리아 로버츠)를 만난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래리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친절하고 활기찬 젊은 친구 ‘탈리아’(구구 바샤로)를 만나면서 조금씩 대학 생활에 흥미를 느낀다.

영화는 뒤늦게 대학 생활을 하는 크라운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느끼는 소소한 재미를 다루며, 테이노와의 러브스토리를 살짝 엮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된다. 여느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상투적이거나 유치하지 않다. 이는 감독, 제작, 각본, 주연까지 1인 4역을 맡은 톰 행크스가 최근 경제난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며 공감가는 스토리를 차분하게 만들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의 중심인 톰 행크스와 줄리아 로버츠의 독보적인 매력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톰 행크스는 발군의 연기력으로 순박하고 진실한 인물 래리 크라운을 표현해냈다. 할아버지 안경을 쓰고 폴로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어 입는 최악의 패션센스를 보여주는가 하면, 스쿠터를 타다 고꾸라지고, 키스를 받았다고 길길이 날뛰는 그의 면면들이 신선한 재미를 준다.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영화 초반에 히스테리컬하고 괴팍한 성격을 거침없이 터뜨려 놓고, 점점 사랑스런 ‘귀여운 여인’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학점에 플러스를 찍고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거나, 술에 취해 키스해달라고 조르는 다소 과한 애교에도 귀엽고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

톰-줄리아 커플의 로맨스는 뜬금 없이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탄력을 받는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플롯을 따르고 있어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애정결핍의 두 중년이 서로를 안아가는 과정은 사랑 이상의 치유의 감정까지 전이시킨다.

이 영화의 또다른 미덕은 불황으로 대규모 감원이 일상화된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금융위기까지 겹쳐 빚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다. 특히 영화 초반 래리를 해고한 상사가 후반부에 피자배달원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씁쓸하다. 기름 값을 아끼고자 중고 오토바이를 장만해 타고 다니는 래리의 모습도 공감이 가면서도 정겹다.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들에게 한 템포 쉬고, 잠시 잠깐 변화를 가져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큰 울림을 주진 않지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원세연 기자 wsy780@daejonilbo.com

취재협조: 롯데시네마 대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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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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