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순수한 이야기 촉촉한 감동

한예서 감독
한예서 감독
공무원 시험 준비로 매일을 보내고 있는 여진은 오늘도 도서관으로 출근을 한다. 대졸자 취업불황 시대의 청춘들이 그러하듯 대한민국 취업준비생으로서 소위 말하는 ‘백조’다. 여진은 공무원 시험합격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매진 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다. 도서관에 들어서서도 항상 마음은 싱숭생숭, 허공을 떠다니고, 공부에 딱히 집중하지도 못한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유달리 공부에 집중이 안 되던 여진은 갑자기 짐을 꾸려 도서관을 나와 무작정 길을 나선다. 서울의 삼청동 거리를 거닐며 봄날 오수의 햇살을 만끽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영어로 한 동양인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바로 한국 여행을 온 일본인 타마키라는 젊은 남성이다. 타마키는 일본인 특유의 경직된 발음으로 여진에게 How do I get to the Gyung-bok palace? 라고 말을 건네며 길을 물어본다. 타마키가 가진 지도를 보며 길을 설명하려던 여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도 같은 방향으로 간다며 함께 가자고 제의를 하고 그렇게 이들의 짧은 동반 여행이 시작된다. 이내 둘은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서툰 영어와 어색한 몸짓만으로도 공감과 소통을 이뤄간다. 이렇게 시작된 이들의 만남은 과연 로맨스라는 낭만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여기 여자와 남자, 한국인과 일본인, 본토인과 방문인으로 나뉘어진 위치에 서있는 두 젊은이가 이제 막 우연의 과정을 거친 어쩌면 필연인 만남의 순간에 마주하고 있다. 기실 수많은 로맨스 영화들은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낯선 이와의 낭만적인 만남과 이별 등을 담아내며 나름 오랜 세월 동안 숱한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뜨거운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그러하기에 지금도 여전히 가장 영향력있는 영화와 드라마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장편 상업영화나 TV 드라마 등에서는 소위 판을 친다고 할 만한 이러한 사랑의 판타지가 한국의 중단편 독립영화에서는 그리 익숙치 않은 풍경인 것이 사실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해도 그러한 관계가 가져오는 상처와 파장, 혹은 근원적인 소통의 부재, 더 나아가서는 관계가 내포하는 권력구조의 작동이나 폭력성 등을 이야기하며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성찰을 관객에게 내밀기 일수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데, 본 중편영화를 만든 한예서 감독은 시종일관 나른하고 따스해서 너무나 편안한 시선과 풍광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독립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한 여자와 남자가 언어와 일상의 괴리를 극복하고 내면의 소통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더없는 로맨스적 구도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한정된 시간과 장소라는 제한된 조건은 언뜻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로맨스 걸작인 ‘비포 선 라이즈’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또한, 미세하게 떨리는 두 사람간의 마음을 전달하는 양 살짝살짝 흔들리며 파고를 형성하는 카메라의 핸드헬드(들고찍기)와 마치 도시 안의 모든 사물이 봄날 햇살로 반짝이며 빛나는 것 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색감으로 담아낸 화면은 이제 막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레 교류하기 시작한 낯선 두 남녀의 심정과 처지를 보는 이에게 무리없이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하겠다.

오래되어 낡아 보일 수 있는 도시의 풍광을 정감있게 도시의 정경을 찾아내고 담아낸 카메라의 시선은 낯설고 어찌보면 갑작스럽다 못해 당황스러운 만남의 순간을 낭만적인 로맨스로 전달하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감독 프로필

한예서

- 대전출생

-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졸업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영상학 석사 재학 중

- 2009 <헬로, 스트레인저>

- 2009대전독립영화제 본선경쟁

-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선

- KT 디지털 콘텐츠 공모전 우수상

- 국제 대학생 평화영화제 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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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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