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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제갈공명

2011-08-02기사 편집 2011-08-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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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나폴레옹과 제갈공명은 모두 하나같이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뛰어난 전술가요 전략가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제갈공명은 날씨를 전술적으로 이용할 줄 알고 전투에 임해 온 것에 반해 나폴레옹은 날씨를 무시하면서 전투를 치렀다는 점이다. 결과는 나폴레옹은 철저하게 패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제갈공명은 연전연승할 수 있었다.

세계제국 건설의 꿈에 부풀어 있던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하기 시작한 때는 1812년 6월! 겨울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에는 믿을 만한 장군 둘이 있다”는 말이 있다. 1월 장군과 2월 장군을 일컫는다. 동장군(冬將軍) 얘기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가는 알았어도 그 여름이 얼마나 살인적인가 하는 사실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러시아 여름의 태양은 온 천지의 생명체를 모두 불태워 버릴 듯이 작열(灼熱)하고 있었다. 숨까지 막힐 정도로 더위에 지친 프랑스 군대는 말라버린 대지 위에서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었다. 마차 바퀴에 잠시 고여 있는 말 오줌까지도 다투어 가며 마셔야만 했다. 병사들은 헬멧을 벗어 집어던졌고 윗저고리도 벗었다. 두 달이 되도록 프랑스 군대는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이미 군사 10만을 잃었다. 러시아 군대는 프랑스 군대를 여름장군에 맡겨 놓고 후퇴만을 거듭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군대는 천신만고 끝에 모스크바에 닿았다. 9월이었다. 벼르고 벼르면서 도착한 모스크바에는 적군도 약탈할 여인도 마실 물조차도 없는 텅 빈 유령의 도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도시 전체를 모조리 파괴하고 불태우면서 후퇴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기대가 일시에 무너지는 허탈감 속에서 나폴레옹이 퇴각명령을 내렸을 때에는 이미 동장군이 대지를 냉동시키고 있을 즈음이었다.

병사들은 지난여름 더위에 못 이겨 옷과 헬멧까지 모조리 벗어 버린 것을 후회하면서 하나하나 죽어 갔다. 60만 명의 병사 중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는 고작 3만! 파리로 입성한 병사는 8000명에 불과하였다. 그해 12월의 일이었다. 전투 한 번 제대로 치러 보지 못하고 오직 날씨와 싸우다 패한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제갈공명은 어떠한가! 모든 자연현상을 무기로 활용할 줄 아는 천재였다. 바람도 안개도 그에게는 무기였다. 초선차전(草船借箭)! 볏단 실은 배를 이용해 10만 개의 화살을 빌렸다는 유명한 얘기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살이 아니라 안개였다. 주유와 제갈량이 힘을 합해 20만 조조 군사를 화공(火攻)으로 무찔러 전멸시켰다. 여기서도 화공전략이 뛰어났다고 하기보다는 한겨울의 강바람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기상은 전투에서만 요긴한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한 분야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지구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폭설과 폭우와 바람, 가뭄과 폭염과 한파가 예상치도 않은 지역에서 휘몰아치고 있다. 미국 일부에서의 가뭄은 호수 하나를 모두 증발시켜 버렸다. 지난해 여름 모스크바에서는 130년 만의 폭염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파키스탄에서는 홍수가 나서 1100여 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중국 남부에서의 폭우는 400여만 명의 이재민을 냈다.

우리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7월 말에는 중부지방에 내린 살인폭우로 수도 없는 인명 손실과 재산 손실을 가져 왔다. 이 바람에 정부에 대한 비난이 물폭탄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무려 1m가 넘는 눈이 강릉지역을 뒤덮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장기적인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기상이변은 인간에게는 재해로 찾아오지만 지구적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자연현상이다. 그 자연현상을 무슨 수로 제어해 나갈 수 있을까? 원인도 제거할 수가 없다. 제갈량처럼 동남풍을 불러올 정도의 능력이 없다면 자연현상을 예견하고 미리 대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기상을 예견하면서 식량안보와 함께 국가안보에도 전력투구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대단히 절박하고 심각하다. 국가경영의 핵심과제로 다루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안개 낀 일요일 새벽 방향도 알 수 없는 포성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병사들이 군화 끈도 매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하는 노파심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어찌 필자 한 사람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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