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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부담만 키운 가공식품 ‘오픈 프라이스’

2011-07-29기사 편집 2011-07-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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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물가안정 위해 내달부터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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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수정(38) 씨는 아이스크림을 살 때만큼은 옆 아파트 상가 슈퍼마켓을 찾는다. 50% 세일을 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집 앞 편의점이나 슈퍼에서는 똑같은 콘 아이스크림이 1500-1800원 하는데 여기에선 1000원에 살 수 있다”라며 “아이스크림을 여러개 사면 가격차이가 꽤 나기때문에 조금 걷더라도 할인해주는 상점을 찾게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정근(42) 씨는 지난주 회사 앞 편의점에서 속 쓰린 경험을 했다. 함께 점심을 먹은 동료에게 “날도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할까?”라고 했던 박씨는 콘 아이스크림 5개를 사는 데 1만 원을 썼다. 그런데 며칠 뒤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간 그는 똑같은 제품이 하나에 1100원 하는 것을 발견했다. 김씨는 “도대체 진짜 가격이 얼마냐”며 “기준이 되는 가격이 없으니까 구매할 때 제대로 된 값을 내고 사는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가공식품 ‘오픈 프라이스’ 1년... 소비자 혼란만 커져

작년 7월 1일부터 아이스크림·빙과류·과자·라면 등 가공식품 4종에 확대 시행된 ‘오픈 프라이스(open price)’가 도입 1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최근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다음 달부터 오픈 프라이스 제도 적용 대상에서 이 4개 품목을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오픈 프라이스’는 제조업체가 표시하던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애고 유통업체가 상품의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실제 효과는 어땠을까. 해당 제품의 가격은 내려갔을까?

안타깝게도 오픈 프라이스 도입 1년 만에 과자·아이스크림 등 서민 생활에 밀접한 먹을거리 가격은 대부분 급등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생필품 가격정보 사이트 ‘티프라이스(T-Price)’에 따르면 작년 7월 농심 새우깡 1봉지(90g)는 평균 567원(대형마트)-800원(편의점)에 팔렸다. 그러나 6월 현재 새우깡 평균 가격은 658원(대형마트)-900원(편의점)으로 올랐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유통업체별 새우깡 가격 인상률은 대형마트 16.0%, 백화점 13.2%, 편의점 12.5%, SSM(기업형 수퍼마켓) 10.4% 등으로 나타났다.

롯데제과의 월드콘도 같은 기간 대전 중리시장 수퍼에서는 750원에서 1000원으로 33.3% 올랐고, 대전지역 A편의점에서는 1500원에서 1800원으로 20% 인상됐다.

실제로 과자·아이스크림·빙과류 가격은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8개 품목의 가격 인상률을 조사한 결과 5개 품목의 인상 폭이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3.88%)을 크게 웃돌았다.

빙과류가 이 기간 18.03% 오른 것을 비롯해 비스킷 제품은 13.74%, 사탕은 12.85%, 아이스크림은 10.80%, 스낵과자는 7.97%의 상승률을 보였다.

결국, 판매점들의 가격 경쟁으로 주요 먹을거리를 더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만 커진 것이다.



◇선진 유통제도 정착 갈 길 멀다

하지만 출고가를 조절하는 제조업체, 판매가를 결정할 수 있는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물가 상승에 대해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제조업체는 납품가를 올리겠다고 통보하면서 실제로 희망하는 판매가도 제시한다”며 “대형마트가 전적으로 바잉파워(buying power)를 가진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조업체 관계자는 “가격 결정권은 이미 유통업체에 넘어갔고 현장 판매점에서 가격을 올리고 있는데 소비자 비난은 제조업체로 쏟아져 곤혹스럽다”며 “출고가보다 더 큰 폭으로 판매가를 올리는 유통업체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제조업체는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출고가를 올리고, 유통업체는 출고가 인상을 이유로 판매가를 올리는 관행은 굳어진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가공식품의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아직은 과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동네 슈퍼마켓 같은 영세업체는 아직 가격 결정권이 없고 대형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와 힘의 균형을 찾고있는 과정”이라며 “제조업체, 유통업체 신경전에 소비자만 피해를 보고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다수 유통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오픈 프라이스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제도 재정비와 소비자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홍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본부장은 “생필품에 가까운 가공식품은 제도 시행 전에 사전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야 했다”며 “가격 선택권을 유통업체에 넘겨주는 만큼 각 업체가 가격을 매기는 방식에 대한 정책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지아 기자 jia1000@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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