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민<한국한의학연구원 전통의학정보연구본부장>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된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는 총회 폐막일인 2010년 10월 30일, 생물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ABS. Access and Benefit Sharing)를 규정하는 ‘나고야 의정서’를 채택하였다. 내용의 골자는 적용대상 유전자원을 활용하여 연구개발을 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이익을 얻을 경우, 해당 유전자원을 제공한 국가와 상호 합의된 조건(MATs. Mutually Agreed Terms)에 따라 공평하게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연구원에서 한국산 인진쑥 연구개발을 통한 이익 창출이 이루어졌을 경우, 지금까지 미국의 연구원에서 독점하던 개발이익을 한국과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의학 분야, 특히 문헌을 다루는 분야에서 ‘나고야 의정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개발이익의 공유 대상이 생물자원에 국한되지 않고 유전자원과 관련된 전통지식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독특한 처방을 바탕으로 외국의 어떤 나라에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연구개발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문헌지식을 근거로 이익 공유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어둑하고 쾌쾌한 고서더미 속이나 찾는 이 없는 책시렁 위에 놓였던 한의서들은 가장 첨단의 연구결과를 초래하는 연구 현장에게 가장 필요한 ‘지식창고’로 탈바꿈한 것이다. 특히 몇천 년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한의서적은 지금 실험실에서 바로 극복할 수 없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의학연구원에서는 2007년부터 전통의학고전국역총서를 매년 간행하고 있다. 이 총서 시리즈는 우리나라 특유의 한의서만을 엄선하여 표점, 해제를 가해 놓은 특성을 지닌다. 때문에 중국이나 여느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산하의 먹을거리로 약재구성이 된 사례들이 많다. 어느 때보다도 ‘한국적인 것’이라는 소재가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지금, 40여 권의 이 총서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적지 않은 양의 지식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까지 실험실에서의 요구는, 이러한 서적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다. 아무리 쉽게 풀어 쓰더라도 실험실의 연구자들에게는 아직 활용 기반이 미약하다는 쓴소리도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원에서는 번역서들의 활용 기반 마련을 위한 검색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신규사업을 기획 중이다. 지금까지 실험실에서는 다량의 실험을 통해 스크린을 한다든지, 알고 지내는 한의사로부터 처방을 받는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무작정 ‘동의보감’ 같은 책을 뒤져 가며 실험 제재를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 인력에 대한 낭비의 방지를 위해서는 잘 구성된 정보를 효과적으로 연구자에게 접근시켜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배가 아플 때 평위산(平胃散)을 복용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라면 ‘복통’에 관한 내용을 먼저 찾게 되지 ‘평위산’에 관한 내용을 먼저 찾지는 않는다. 머리가 아플 때도, 손발이 아플 때도, 모든 경우가 그러하다. 다시 말해 복통 관련 검색을 위해서는 ‘복통’을 넣으면 ‘평위산’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고서의 활용을 위해서는 정확한 번역뿐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돌아가 연구와 임상 현장에서의 수요 파악 및 그에 발맞춘 검색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지닌 막대한 한의학 지식을 연구자와 임상가 중심으로 재조직하는 설계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검색 모델은 외국으로부터 우리나라가 보유한 지식재산 보호에 일조하는 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는 250억대 매출을 올렸으며 TIME지에서 적극적으로 다룬 바 있는 ‘조인스정’이 있으며, 1000억대 매출을 예상하는 ‘스티렌정’이 있다. 이 약들은 모두 티끌 같은 한방 원리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산이 된 사례이다. 우리에게 제2의 ‘조인스정’과 ‘스티렌정’ 개발을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누구나 활용 가능한 한의학 지식의 검색 모델 개발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들판에 의미 없이 피던 들풀 하나가 경제의 한 축이 될 수 있는 시대의 문이 열렸다. 우리 연구원은 이 시대의 빗장을 직접 열고 다가오는 시대의 파고를 넘나들 수 있도록, 모든 연구자들이 승선할 수 있는 든든한 배 한 척을 건조하고자 한다. 각계의 관심과 기대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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