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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이 따로 있나! 웃기면 희극이지!

2011-07-19기사 편집 2011-07-1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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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느 날 외신기자와의 간담회에서 정치권의 “포크배럴(pork barrel)에 맞서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고 말한 것이 정치권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다. 여야 의원들이 하나같이 들고일어나 일국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인을 ‘돼지’에 비유해서 말할 수 있느냐는 성토가 하늘을 찔렀다. 어느 의원은 이 발언을 놓고 “시대착오적, 자폐증적 망언”이라고까지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의원들이 포크배럴이라는 말을 알고도 짐짓 장관을 비난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저돌적(猪突的)인 자세를 취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포크’ 하니까 앞뒤 살필 겨를도 없이 ‘돼지’ 어쩌고 하면서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무래도 희극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말은 이미 미국정치에서 통상적으로 의원이 지역구 사업을 위해 억지로 로비하여 얻어가는 선심성 예산에 대한 비유로 활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돼지 이야기로 가서 닿기야 하겠지만 그 말을 이제 와서 돼지와 연계시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재 정치권에서 관용어처럼 쓰는 말을 그 근원을 따져 가면서 시비를 걸기로 하면 시비 걸리지 않을 말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호가호위(狐假虎威)나 토사구팽(兎死狗烹)과 같은 고사성어에서부터 방금 필자가 사용한 저돌적이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물을 빗대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최근 의사진행과 관련하여 많은 불미스러운 일이 잦아지자 아예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제도화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의사진행방해를 합법적으로 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이 말도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약탈자’요 ‘해적질’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정치사에서 정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휘그당(Whigs)과 토리당(Tories)도 어원상으로만 보면 휘그는 말몰이꾼이나 말 도둑놈쯤 되는 말이고 토리는 도둑놈이나 깡패를 일컫는 말이었다. 상대 당을 욕하다 보니 그 욕이 뭉쳐져 정당의 이름으로 변하였다고 보여진다.

현재와 같은 선거제도가 정착하기 전 영국에서도 한때는 부패선거구(rotten borough)나 독점선거구(pocket borough) 같은 것이 있었다. 유권자 수가 7명밖에 안 되는 선거구에는 대표자가 있고 인구 15만이나 되는 선거구에는 한 명의 대표자도 선출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이 경우를 두고 어떻게 남의 소중한 선거구를 썩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열을 올린다면 그것은 희극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 정치권에서 벌어진 희극치고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벌어진 희극이 압권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자타가 공인하듯이 법률가들이 제일 많은 정당이다. 역대 총재나 대표를 보아도 이회창 박희태 강재섭 안상수 홍준표 여기에 원내 대표인 황우여까지 모두가 율사(律士) 출신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치르는 대표 경선이 정당법 위반이라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당내 전원위원회인가를 두 번 치러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것도 당내의 율사 출신도 아닌 무명의 대의원이 제소한 재판에서 비로소 정당법 위반이라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율사라는 사람들이 정당법도 모르면서 정당을 하나 하고 비아냥거려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의회에서 벌어지는 희극적 현상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5대 국회 때의 일이다. 무슨 투표인가가 한창 진행 중인데 어디서 여인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폭행하지 말아요!” 국회 회의장 안에서 무슨 성폭행인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별안간 웃음꽃이 피는 것이었다. 알고 본즉 야당으로 있는 민주당의 한 여성의원이 의사방해를 위해 투표함의 입구를 손으로 막고 있었다. 필리버스터다. 그러자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 한 사람이 그 여성의원의 손을 잡아채면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으려고 하자 고함을 지른 것이다.

필자가 예결위원장으로 있을 때의 얘기도 희극이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김제 출신의 야당 출신 의원이 농림부장관을 향해 지금까지의 정책이 ‘살농(殺農)정책’임을 실토하라고 윽박질렀다. 장관은 못 들은 척 눈을 내리 깔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김제 출신 의원이 화가 났다. “왜 동문서답하는 거요?”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래서 사회자인 필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동문(東問)을 하니까 서답(西答)하는 거 아니오?” 장내에는 폭소가 터졌다. 완전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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