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66. 철호의 집 앞

철호가 뜨락에 들어서는데 “가자!” 하는 어머니의 소리.

철호 한 대 맞은 사람 모양 우두커니 한동안 서 있더니 되돌아서 터벅터벅 걷는다.

여기에 덮이는 철호의 소리 - “어머니, 어디로 가자시는 말씀입니까?”

S# 67. 정신 병원 진료실

4, 5년 전의 어머니가 병상에 반듯이 누워 있다.

멍하니 어느 피안(彼岸)을 바라보는 눈.

어머니 가자!

그 옆에 청진기를 손에 들고 있는 의사.

그 앞에 마주 서 있는 좀 말쑥한 철호.

철호 도대체 어디로 가자고 저러실까요. 선생님!

의사 과거에는 생활이 윤택하셨다니까 아마 그 당시로 돌아가자시거나 아니면 우리 현실보다 나은 세계 -말하자면 영겁(永劫)의 나라일 테죠.

철호 선생님! 회복될 수 있을까요?

의사 글쎄요. 한 삼사 년 치료를 받아 보시면 그때 어떤 결론이 나오겠죠.

S# 68. 산비탈 길

뚜벅뚜벅 걷고 있는 철호.

S# 69. 피난민 수용소 안

담요바지 철호의 아내가 주워 모은 널빤지 조각을 이고 들어와 부엌에 내려놓고 흩어진 머리칼을 치키며 숨을 돌리고 있다.

철호의 소리 - “저걸 저토록 고생시킬 줄이야.”

담요바지 아내의 모습 위에 O·L*

여학교 교복을 입고 강당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 시절의 아내.

또 O·L 되며 신부 차림의 아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옆에 상기되어 앉아 있는 결혼 피로연 석상의 철호. 노래는 ‘돌아오라 소렌토로’.

- 중 략 -

S# 74. 철호의 집 방 안

영호 취직이요? 형님처럼 전찻삯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남의 살림이나 계산해 주란 말예요? 싫습니다.

철호 그럼 뭐 뽀족한 수가 있는 줄 아니?

영호 있지요. 남처럼 용기만 조금 있으면.

철호 용기?

영호 네. 분명히 용기지요.

철호 너 설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영호 엉뚱하긴 뭐가 엉뚱해요.

철호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영호야! 그렇게 살자면 이 형도 벌써 잘살 수 있었단 말이다

영호 저도 형님을 존경하지 않는 건 아녜요. 가난하더라도 깨끗이 살자는 형님을……. 하지만 형님! 인생이 저 골목에서 십 환짜리를 받고 코 흘리는 어린애들에게 보여 주는 요지경이라면야 가지고 있는 돈 값만치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말 수도 있죠. 그렇지만 어디 인생이 자기 주머니 속의 돈 액수만치만 살고 그만둘 수 있는 요지경인가요? 형님의 어금니만 해도 푹푹 쑤시고 아픈 걸 견딘다고 절약이 되는 건 아니죠. 그러니 비극이 시작되는 거죠. 지긋지긋하게 살아야 하니까 문제죠. 왜 우리라고 좀 더 넓은 테두리까지 못 나가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영호는 반쯤 끌러 놨던 넥타이를 풀어서 방구석에 픽 던진다.

철호가 무겁게 입을 연다.

철호 그건 억설이야.

영호 억설이요?

철호 네 말대로 꼭 잘살자면 양심이구 윤리구 버려야 한다는 것 아니냐.

영호 천만에요.

- 이범선 원작/나소은·이종기 각색. 오발탄 -

*O·L(overlap):한 화면 끝에 다음 화면의 시작을 합치면서 부드럽게 화면을 바꾸어 가는 기법.

1.위 글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다. 감독이 각 배역을 맡은 연기자들에게 주문할 사항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S# 67의 철호는 몹시 착잡하고 근심 어린 표정을 짓도록 합시다.

②S# 67의 어머니는 초점 흐린 눈에 넋 나간 듯한 모습을 잘 살려 내도록 합시다.

③S# 68의 철호는 지친 표정으로 걷다가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으로 나타냅시다.

④S# 69의 철호의 아내는 궁핍한 삶을 잘 참아 내는 순종적인 인물로 그립시다.

⑤S# 74의 영호는 소심하고 용의주도한 인물로 보이도록 합시다.

[문제읽기를 통해] 작품의 주요인물들이 답지에 다 나온다. 주인공 ‘철호’와 ‘어머니, 철호의 아내,영호’ 의 캐릭터를 잘 분석해야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지문읽기와 문제읽기를 통해] 정답은 ⑤이다. ⑤번에서 영호는 ‘소심한 인물’ 이라고 했다. 그러나 S# 74에서 ‘용기만 조금 있으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 고 말하는 영호를 보면 소심하다고 볼 수 없다. 특히 그 ‘용기’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용기라고 본다면 오히려 ‘위험한 인물’ 이 영호임을 알 수 있다.

2. S# 69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세 화면이 연속으로 중첩되어 상황의 변화를 보여 준다.

②철호 아내의 좌절된 꿈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③철호의 이중적 성격이 소도구를 통해 나타난다.

④담요바지와 교복이 대조적 이미지를 만든다.

⑤인물의 내적 갈등 요인을 짐작하게 한다.

[문제읽기를 통해] 장르가 희곡이니 만큼 문제의 유형이 특이한 편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변화 위주로 살펴본다.

[지문읽기와 문제읽기를 통해] 정답은 ③이다. ‘철호가 이중적 성격’이라고 했는데 특별히 그런 성격이 S#69에 나와 있지 않다. 또한 그렇게 여기게 할 소도구도 등장하고 있지 않다.

3.S# 74의 상황을 속담을 이용하여 재구성하였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영호:가난이 병보다 무섭다잖아요. 빨리 이 구차한 삶에서 벗어나야 해요.

②철호: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단 말이냐?

③영호:호랑이 굴에 가야 호랑이를 잡지요! 문제는 용기입니다.

④철호: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처럼 인생을 살아왔더라면 나도 벌써 잘살 수 있었단 말이다!

⑤영호: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어요. 어떻게든 저는 돈을 벌러 넓은 테두리로 나가고야 말 거예요.

[문제읽기를 통해] S# 74에서 영호와 철호의 갈등을 속담을 통해 재구성한 문제이다. 각 선택지의 속담에 밑줄을 치고 그 의미가 맞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지문읽기와 문제읽기를 통해] 정답은 ④이다.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다왔다면 나도 벌써 잘 살 수 있었단 말이야’ 라는 철호의 말은 지문에서 그대로 나온다. 그러나 속담은 영호의 생각을 반영해야 하는데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호는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4.<보기>는 (가)에 해당하는 원작 소설 부분이다. 이 장면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고려했을 사항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가자!”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골목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철호는 다시 발을 옮겨 놓았다. 정말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건 다리가 저려서만이 아니었다.

“가자!”

철호가 그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그만치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가자는 것이었다.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렇게 정신 이상이 생기기 전부터 철호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던 말이었다.

삼팔선. 그것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 주어도 철호의 늙은 어머니에게만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난 모르겠다. 암만해도 난 모르겠다. 삼팔선, 그래 거기에다 하늘에 꾹 닿도록 담을 쌓았단 말이냐 어쨌단 말이냐. 제 고장으로 제가 간다는데 그래 막을 놈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죽어도 고향에 돌아가서 죽고 싶다는 철호의 어머니였다.

- 이범선, 오발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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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 장면은 영상으로 처리하기가 복잡하므로 내용을 효과적으로 압축하도록 한다.

②철호의 심정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인상적인 독백을 하나 집어넣도록 한다.

③대사 이외의 서술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내레이션 기법을 활용하도록 한다.

④분단과 관련된 문제는 작품의 주제에 대한 해석을 제한할 수 있으므로 표면화하지 않도록 한다.

⑤어머니의 “가자!” 소리와 철호의 말을 한데 겹치게 해서 대사의 동시적 표현이 가능한 영화의 장점을 살리도록 한다.

[문제읽기를 통해] 이 문제는 <보기>자체가 길고 문제를 풀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성격이 아니라서 선택지의 문장에 밑줄만 치고 넘어간다.

[지문읽기와 문제읽기를 통해] <보기>의 원작 소설을 지문과 같은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들을 고려했는지 보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정답은 ③번이다. ‘내레이션 기법’을 활용한다고 했는데 지문 어디에도 ‘서술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내래이션’이 드러나고 있지 않다.

< 논술 >

※ 다음을 읽고 다 쓴 후에 이상샘 메일 (e-sang@hanmail.net) 로 보내 주시면 선착순 3명에게 무료로 첨삭지도 해 드립니다. ( 대상 : 중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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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6·25전쟁 때 어떤 사람이 남쪽에 있는 친척집으로 피란을 가, 그 집 다락방에서 반 년을 숨어 지내는 동안 아주 만물 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전쟁 중이었고, 지금처럼 읽을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인데, 다행히 그 집 다락방에 백과 사전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불안하고 심심해 시간을 보낼 목적으로 백과 사전을 읽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점점 재미를 붙여 그 백과 사전을 열 번도 넘게 읽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일이나 이치에 대해 만물박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전은 우리 인류가 글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여태까지 쌓아 온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따라서, 다락방에 숨어 백과 사전을 읽은 그 사람은 보물 창고 속에 반 년을 있다가 나온 셈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동식물 사전, 역사 사전, 경제 사전, 과학 사전, 건축 사전, 문학 사전, 음악 사전, 미술 사전 등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살려 묶은 다양한 종류의 사전이 있다. 거기에 각 가정마다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 사용이 급증하면서 인터넷 사전이나 시디형태의 전자 사전까지 일반화하여 가고 있는 중이다. 바야흐로 사전이 예전보다 더욱 가까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고 하면 우리말에 대해 모르는 것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말을 다스리고 글을 쓰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하는 일을 바로 옆에서 도와 줄 사전을 늘 곁에 두고 있다. 이제까지 잘 몰랐던 말의 뜻이나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려 주는 선생의 역할뿐 아니라,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찾아 주는 도우미의 역할까지 사전이 해 준다.

<중략>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사전이 아무리 가까이에 있다 한들 그것을 찾아보지 않으면 사전 속의 지식은 남의 머릿속에 든 지식일 뿐이다, 아무리 크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 할지라도 그 샘물을 먹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면 목을 축일 수가 있겠는가? 목동이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으나, 그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일은 말 스스로가 해야 하는 법이다.

- 중학교 <국어2-1>, ‘사전을 찾아 가며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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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에서 지은이가 궁극적으로 주장하게 될 내용을 추론해 봅시다.

2. 우리의 일상 언어를 고려해 보았을 때, <보기>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 말과 글을 통해 전달 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지 적어 봅시다.

------------------------------------------------------------------------ <보기>

국어 사전은 우리말의 뜻과 발음을 풀이한 책이고, 백과 사전은 각 분야별로 인간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상세한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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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과 글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글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을 토대로 적어 봅시다.

[어휘력 tip]

1. ‘성대묘사’가 맞아요? ‘성대모사’가 맞아요?

- ‘성대모사’가 맞습니다. 명사 ‘성대모사’는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림 또는 원본을 베끼어 씀’의 뜻으로서 ‘이 작품은 원작의 모사에 불과하다’에 쓰입니다. 한편 ‘묘사’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으로 표현함’의 뜻으로서 ‘심리묘사, 현장묘사’에 쓰입니다.

2. ‘절대절명의 위기’가 맞아요? ‘절체절명의 위기’가 맞아요?

- ‘절체절명의 위기’가 맞습니다. 명사 ‘절체절명(絶體絶命)’은 ‘몸도 목숨도 다 되었다는 뜻’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궁박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3.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맞아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맞아요?

-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맞습니다. ‘떼려야’의 ‘려야’는 ‘-려고 하여야’의 준말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는 곧 ‘떼려고 하여야 뗄 수 없는’의 의미를 가지므로 자연스러운 표현이 됩니다. 반면 ‘뗄래야’의 ‘래야’는 ‘-라고 하여야’의 준말로서 ‘뗄래야 뗄 수 없는’은 ‘떼라고 하여야 뗄 수 없는’의 의미가 되어서 부자연스럽죠. 그래서 ‘떼려야 뗄 수 없는’이 맞는 표현입니다.

4. ‘허다하게 많다’가 맞아요? ‘허다하다’가 맞아요?

- ‘허다하다’가 맞습니다. 형용사 ‘허다하다’는 ‘수효가 매우 많음’을 의미하는데 ‘허다하다’의 뜻 안에 ‘많다’가 포함되어 있어 ‘허다하게 많다’는 의미의 중복이 일어난 경우입니다. ‘지나치게 과신하다’가 아니라 비슷한 예로 ‘과신하다’가 맞습니다. 또한 ‘역전앞’은 ‘역전’으로 ‘처갓집’을 ‘처가’로 ‘생일날’을 ‘생일’로 고쳐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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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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