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5 23:55

논리 아닌 환상을 쫒는 과학 문화를 경계하며

2011-05-19기사 편집 2011-05-18 06:00:00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외부기고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경수 (KAIST 기계항공시스템학부 교수)

우리 사회의 또 한 차례의 열병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1장이 끝나는 정도의 단계인데, 온 나라가 사분오열되어 버렸고, 모두가 ‘과학 한국’을 위한 ‘지극 정성’의 노력을 다해 온 나머지 벌써 KO가 될 지경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거점지역으로 대전의 대덕특구가 발표되었고, 막대한 예산이 내년부터 투입되어 중이온가속기를 포함하여 기초과학연구원을 새로이 설립하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정부의 야심찬 발표가 있었다. 정치권, 지자체, 과학계 누구를 막론하고, 온 국민 모두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평상시에 과학기술 연구와 투자에 이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열중했더라면, 대한민국은 벌써 세계 과학기술계의 정상에 우뚝 서 있으련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대규모 투자를 통한 경제 성장 동력 창출이라는 정부의 뜻과 ‘단군 이래 최대 투자’를 통한 과학계의 노벨상에 대한 염원이 어우러지며 묘한 환상 아닌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자체 간의 역학구도와 정치적인 이해관계 등 복잡한 문제들을 차치하더라도, 과학계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은 벌써부터 노벨상의 단꿈에 젖어 있는 듯하다.

2006년 초반,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출신의 한 전직 장관은 지자체장 선거출마를 위해, ‘지니’라는 로봇 2대와 함께 당시 여당에 입당을 하였다. 지금은 로봇 기술 방향과 한계에 대해 충분히 현실을 직시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로봇은 사람과 함께 삶과 문화를 영위하는 ‘사람 같은’ 존재로 모든 일반인들에게 환상을 심어 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로봇이 뛰어나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소통하고 함께 일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일부의 발 빠른 과학기술자와 정치인들은 로봇 환상을 ‘꽤나 잘’ 활용하고 있었다. 얼마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을 때, 수많은 일반인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극한 작업에 로봇을 투입할 일이지, 왜 사람이 위험하게 작업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과학기술 주변인들이 심어놓은 환상 속의 로봇과 현실과의 괴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단적인 예이다.

벌써 수년 전의 일이지만, 줄기세포를 이식받으면 침상에 누워 있던 환자가 바로 일어서게 되고, 불치병을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너무나 과대 포장되어 바이오 신약과 바이오 기술이 세상을 ‘천지개벽’ 할 수 있는 것처럼 알려졌던 그 시기에는, 연구비뿐만 아니라 벤처 투자에 ‘묻지마’ 투자가 대세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자동차, 조선, 건설 같은 소위 ‘눈에 보이는’ 기술은 천대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인 2011년 현재, 자동차·조선 기술이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이외에도 과학기술의 환상의 예는 주변에 수없이 많다. 전기자동차의 선두 주자처럼 인식되었던 한 상장회사가 10:1의 감자를 결정해 많은 투자자들을 울리고 있다는 소식도 안타깝다. 전기자동차가 기존의 엔진자동차를 금방이라도 대체할 것 같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환상을 좇던 선량한 피해자들만 남게 되었다. 전기자동차가 일반 엔진자동차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여러 어려운 기술들을 풀어야 하지만, 결정적으로 전기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상용화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기가 저가의 청정에너지라는 일시적 사회 패러다임에 가려져, 지난 한 세기 이상 풀지 못했던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문제를 수년 내에 풀겠다는 것은 바이오 환상에 버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 미국에서 유행했던 나노기술이 한국에 과대 포장되어 전달되면서 나노기술에 대한 대폭적인 투자와 일반인의 관심이 지대했었다. 그러나 지나친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일반인이 기억하는 나노기술은 은나노코팅 정도이다. 그나마도 항균, 살균기능이 있다는 광고일 뿐, 이렇다 할 산업 경제적 의미와 효과는 미미하다.

분명, 당장의 실익이 없다고 해서 미래 과학기술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아무리 지나쳐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환상을 만들고 이를 자신들의 이익으로 만들어 가려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이기주의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우리 사회에 주어진 또 하나의 커다란 숙제이고,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과제이다. 기초과학에 막대한 투자를 했으니 이제 우리는 노벨상을 타겠지 하는 모호한 생각은 곤란하다. 노벨상을 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명확히 따져야 한다. 또한 각 지자체들은 자신들이 유치해야 하는 이유를 정치, 경제 본위의 이기주의가 아닌 과학적인 명분과 국가 발전 차원의 견지에서 논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발전을 지속해 오며 경험한 수많은 과학 환상의 한 예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과학기술은 논리이다. 논리를 무시하고 환상을 좇는 껍데기 과학은 우리 사회에 아무런 득을 주지 못한다.

김경수 (KAIST 기계항공시스템학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