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을 만족시키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한 끼가 행복하다. 그러나 맛과 함께 철학·정신이 깃든 음식을 만나게 되면 그 여운은 하루를 넘어 오랫동안 남는다. 작년 12월 대전일보사 맞은편에 문을 연 대전 월평동 ‘이비가 짬뽕’은 바로 이에 가까운 ‘명품 맛집’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짬뽕은 ‘어우러짐의 음식’이라서 조화의 미덕을 갖춰야만 최고의 짬뽕으로 꼽힐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를 쓴다 해도 각자의 개성만 드러낼 뿐 어우러짐이 없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짬뽕이 아니다. 모든 식재료가 어우러져 큰 틀에서 하나의 맛으로 완성될 때 그것은 비로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짬뽕이라 평가받을 수 있다.

이 집에는 주인장의 맛에 대한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문구들이 많이 걸려 있다. 매장 벽면에 큼지막하게 자리한 ‘음식은 건강이고 과학이며 예술입니다’라는 문구에서 음식을 단순히 ‘한 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마음가짐이 드러나는 듯하다. 또 한쪽 벽면에는 ‘재료 실명제’라는 제목 아래 그날 그날 재료들이 어디에서 공급되는지 ‘이력’이 줄줄이 쓰여 있다. 쌀·고춧가루·굴·바지락·들기름 등 국산임은 물론, 출신 지방까지 알 수 있다. 세심하고 정직한 배려다.

이 집 짬뽕은 ‘눈물 나게 매운 맛’, ‘얼큰하게 매운 맛’, ‘무난한 매운 맛’ 정도의 진부한 수식어로 표현하기를 거부하며, 흔한 짬뽕집에서 먹던 그저 그런 짬뽕과는 다르다. 특별한 맛의 비결은 바로 토종닭과 황기 등 여러 한약재를 넣어 24시간 동안 정성스레 고아낸 닭 육수에 있다. 멸치나 무 등으로 육수를 쓰는 일반 짬뽕집과는 차별화한 셈. 이렇게 끓여낸 육수는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하며 쉽게 맛보지 못했던 깊고 묵직한 맛이 전해진다. ‘짬뽕의 생명은 국물에 있다’고 한다면 이곳 짬뽕 국물에 우선 후하게 합격점을 주고 싶다. 한 번 들었던 숟가락을 놓기 싫을 정도로 중독성 있는 국물맛이 일품이다.

또 이 집 짬뽕에 사용되는 면발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집 면발과는 외형적으로나 식감으로나 전혀 다르다. 그 비법은 알칼리수에 있다. 일반 생수를 이용하지 않고 알칼리수를 이용해 반죽하면 밀가루에 점성과 탄성에 더해져 훨씬 찰진 반죽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이에 숙성과정을 거쳐 ‘이비가 짬뽕’만의 면발이 완성된다. 굵지도 얇지도 않은 면발은 육수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우선 면발이 굵지 않아 저 혼자 따로 놀지 않는다. 육수를 촉촉이 머금은 면발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적당한 두께의 면발 덕이기도 하다.

△이비가짬뽕 7000원 △한우짜장 7000원 △탕수육 7000원 ☎042(482)7484. 50석 가게앞주차

글·사진 이지형 기자 ljh80@daejonilbo.com

우리집 자랑

“후루룩 넘김이 좋으면서도 찰기가 있는 면발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연구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것이 면 요리가 발달한 중국 산시성의 면발 비법입니다”

‘이비가 짬뽕’ 권혁남 사장은 전국 100여곳의 짬뽕집을 탐방하며 먹어보지 않은 짬뽕이 없고 많게는 하루에 여섯 그릇까지도 시식해 본 적이 있다”는 자타공인 ‘짬뽕 마니아’. 주문과 동시에 질 좋은 재료로 바로 조리해 서비스함으로써 맛과 분위기, 손님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짬뽕 장인’이기도 하다.

권 사장은 “그동안 탐방했던 음식을 주제로 한 기행문을 엮은 책을 발간해 푸드 칼럼니스트로서 명성을 쌓고 싶다”는 포부를 살짝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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