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신문 읽기가 두려워졌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기사보다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기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안은 고(高)물가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과 지역갈등이 톱뉴스요, 나라 밖은 리비아 전쟁의 참상과 이웃 나라 일본의 3·11 대지진 사태에 관한 소식이 주요 헤드라인이다. 그중 요즘 들어 부쩍 신경 쓰이는 기사가 눈에 띈다. 바로 이런 대재앙 중에도 일본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또다시 주장한다는 것이다.

대지진의 영향으로 일본 원전이 붕괴됐을 때 우리 국민들은 크게 불안해했다. 가장 가까이 인접해 있는 국가로서 방사성물질에 대한 불안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한반도는 안전하다고 했다. 지구의 자전과 편서풍의 영향으로 방사성물질이 흩어져 한반도 유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서울 등 전국 각지의 대기 중에서 방사성물질이 발견됨으로써 한반도 안전지대의 믿음은 끝이 났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이 저기압 제트기류를 타고 북상하여 시베리아 반도를 거쳐 한반도로 되돌아와 유입된 것으로 파악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달 중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편서풍에서는 더 많은 핵종이 발견될 것이란 추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전 부근에선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플루토늄이 추가 검출됐다. 대표적인 방사성물질인 요오드, 세슘, 제논은 반감기가 수년에서 수십 년인 반면 플루토늄은 8000만 년이란 긴 시간이 걸리는 지구상 몇 안 되는 맹독성 물질이다. ‘죽음의 재’ 또는 ‘악마의 재’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국민은 열정적으로 일본 돕기에 나서고 있다. 외신도 가깝고도 먼 사이인 두 국가에 훈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조성된 화해 무드가 과거 역사 속의 앙금을 씻어내는 ‘종결자’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번에도 일본은 ‘독도 망발’을 자행하며 두 얼굴을 보였다. 지난달 30일 독도 영유권을 골자로 하는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날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은 오는 7-8월에 채택 여부가 결정되고 내년 4월부터는 일본 내 중학교에서 공식 사용될 예정이어서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모처럼 만에 이루어진 한·일 우호협력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서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양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강도 9가 넘는 강진과 유례없는 해일로 인해 지축이 흔들리며 일본 땅덩어리는 한쪽으로 밀려났다. 그 정도가 5m에 이른다고 한다. 그 여파로 한반도 역시 미세하지만 모든 기준점 좌표가 움직였다. 한국천문연구원과 지적연구원은 한반도 내 측량기준점이 기존좌표 대비 최대 5cm 정도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수원을 기준으로 보느냐 중국 상하이와 쿤밍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움직인 방향과 거리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끼칠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다행히 국토지리정보원에 의하면 지각변동 후 자연의 복원력에 의해 움직였던 한반도 좌표가 되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세계좌표체계에 의한 지적 재조사가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진피해 돕기로 인해 우리나라와 일본은 매우 가까워진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왜곡된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싣고 흔들린 좌표와 함께 일본은 외교적으로나 물리적 거리로나 우리와 더욱 멀어지게 됐다. 지진으로 뒤틀린 좌표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 엉망이 된 경제지표 또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일본 원전에서 발생된 핵종들과 1세기 전 제국주의의 망령 같은 것들은 돌아와선 안 된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G8 멤버이며 최고의 선진국이다. 지속적인 갈등 유발로 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될 위치에 있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웃이 건강한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까닭이다.

이정룡<대한지적공사 대전충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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