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문제가 뜨겁다.

논쟁의 시발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 신년 방송좌담회를 통해 “과학벨트 입지에 대해 총리실 산하 위원회가 백지상태에서 공정하게 선정할 것”이라고 발언한 데에서 비롯됐다. 이는 곧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대선에 의한 공약(公約)과 공언(公言)인 과학벨트의 ‘충청권 입지 선정’에 대한 약속의 백지화를 시사한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정책공약집 대전·충북·충남편’에는 ‘첨단 과학기술테마벨트 조성’과 관련해 동북아 최대의 첨단과학기술 체험과 과학교육의 테마파크 조성, 동북아 최대의 첨단과학기술 연구 집적지 랜드마크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충청권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과 관련해서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조성, 기초과학센터의 건설,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 유치가 포함돼 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7월 1일 충북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충청권을 위해 추진한 사업인 만큼 충청권에 건설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공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과학벨트의 ‘충청권 입지 선정’에 대한 공약과 공언을 파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후 ‘과학벨트’의 입지 선정 문제는 정치권에서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고 충청권을 비롯해 경기도, 광주·전남, 대구·경북 등 지역에서도 유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 대통령의 약속 이행 여부와 직결돼 있다.

정치지도자의 공약과 공언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 약속의 파기는 곧 지도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국민의 신뢰’를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약이나 공언의 정책적·현실적(실천적) 재검토가 이루어지거나 이를 폐기할 때에는 반드시 국민의 설득과 지지과정을 거쳐 새로운 약속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사회와의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맺어야 할 대학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충청권은 지난해 ‘세종시 수정’ 문제로 수도권과 갈등을 빚었고 올해 또다시 과학벨트 입지 선정 문제로 수도권, 영·호남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학벨트’의 입지 선정 문제에 대한 충청권 대학의 역할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충청권 대학은 원칙적으로 ‘과학벨트 입지 선정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학문적 과학의 합리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충청권 대학은 과학계의 의사를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학계 종사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충청권을 과학벨트의 최적지로 꼽고 있다는 조사 자료가 발표됐다. 충청권 이외 지역에서도 10명 중 6명 이상이 충청권 입지에 공감했다. 이런 과학계의 입장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충청권이 우리나라에서 그 어느 지역보다도 과학기술과 산업기반의 역량이 잘 갖춰진 곳이라는 점을 올바로 인식하고 입지 선정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논리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학연구의 메카인 대덕연구개발단지, 삼성 T/C지방산업단지 중심의 아산과학연구단지, 천안밸리과학연구단지, 오창과학산업단지 및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 등이 국가의 과학정책 차원에서 추진되었고 이 단지들의 연계발전이 국가의 과학발전에 동력을 제공한다는 논리를 적극 개발하고 홍보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과학교육’의 선도적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과학교육에 대한 산학협동체계의 구축, 초·중·고와 대학의 과학교육 프로그램 운용, 과학·경제·교육·환경 등의 융복합 산업 거점 구축, 대학교육과 지역사회 진출과의 연계망 확충, 행정·정책·재정·장학 등의 체계적이고 범지역적인 지원과 협력체계 구축 등 교육적 기초를 다져야 한다.

특히 과학교육을 사회과학, 인문과학, 예술학 등과 아우르는 학제적 융복합 교육의 확대뿐만 아니라 그 교육의 프로그램과 마스터플랜을 마련해 즉시 실행해야 한다.

교수와 대학당국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과학교육 지원체계 확립도 중요하다.

이상과 같은 역할은 충청권 대학이 단순한 지역 차원에서 벗어나 국가의 과학교육에 대한 선도적 기반 구축에 앞장서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충청인의 ‘과학벨트 유치 열망’을 현실화시키는 기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충청권 대학이 국가의 과학 발전을 위해 얼마나 미래지향적 사고를 갖고 노력하고 있느냐라는 점이다. ‘과학벨트’의 입지 선정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자 대학이 부담을 느끼고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지는 않는가에 대해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봉태<선문대학교 총장, 대전·충남 총장협의회 수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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