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만철(공주대 총장)

오늘은 천안함 침몰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빠른 세월 앞에서 천안함 침몰은 어느덧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 있는 천안함의 잔해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천안함 장병 46인들의 영혼은 천안함의 침몰이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두 동강 난 천안함의 절단면은 국토 분단의 냉엄한 현실과 이념 갈등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에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학생의 81%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의 과학적인 원인 규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실 여부를 놓고 과열된 논란을 보면서 서해 바다의 수호신이 된 천안함 장병 46인들은 천상(天上)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아미엘의 일기’로 유명한 스위스 철학자 아미엘이 “인간은 진리에 대해서는 얼음이고, 거짓에 대해서는 불이다”라고 언급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실과 거짓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진실공방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더욱더 건강한 사회로 진화해 나가는 것이 역사의 발전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우리 민족이 현실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참혹한 민족적 시련을 겪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임진왜란 발발 전의 조선 조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고, IMF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던 1997년의 한국 정부에서도 그랬으며, 2010년 천안함 침몰 때의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진실에 눈을 감은 결과는 참으로 참담했다. 1591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던 황윤길, 허성, 황진이 밝힌 왜군들의 조선침략 가능성을 애써 외면했던 선조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란을 가야 했다. 또 1997년 ‘펀더멘털이 안정적이다’라는 말로 외국 전문연구기관의 외환위기 경고를 무시했던 YS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경제신탁통치를 받아야만 하는 비극적 상황을 초래했다.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의 진실을 외면했던 한국 사회는 불과 8개월 후인 2010년 11월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천안함 침몰 1주기를 맞이해서 호국 영령 46인의 제단 앞에서 새롭게 다짐해 볼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동시에 전쟁이 잠시 중단된 나라라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외부세력의 침략 의도도 사전에 파악해서 차단할 수 있는 만반의 대비태세를 상시화해야 한다.

특히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이념대립도 중단하고 분열된 국민의 힘을 난국 타개에 결집할 수 있는 나라 사랑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590년대에 남해 바다를 온몸으로 지켜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언, 즉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백성들과 함께 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은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둘째, 향후 좌우 이념 대립은 상대방이 보지 못하고 읽지 못하는 인식의 사각지대를 없애줌으로써 보다 따뜻하고 선(善)한 사회, 그리고 진실과 정의가 살아 요동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나가는 동력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이념 갈등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주로 빈부의 차이와 북한에 대한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 앞에 서로가 진정으로 솔직할 수만 있다면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적(敵)이 아니라 든든한 동지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서해 바다의 수호신이 된 천안함 장병 46인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셋째, 정부는 찢겨지고 갈라진 천안함을 좀 더 많은 국민들이 찾아와서 볼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백 번을 듣는 것보다는 한 번 보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천안함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침몰해갔는지, 그곳에서 우리 해군 용사들이 어떻게 산화했는지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 큰 교훈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천안함 침몰로 순직한 천안함 장병 46인들의 명복을 빈다. 서만철(공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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