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주도했던 백제문화 바로 세우자” 한목소리

나주 신촌리고분 출토 금동관.
나주 신촌리고분 출토 금동관.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등재를 위해서는 왜곡된 백제 역사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패망’과 ‘잃어버린’ 백제가 아닌 한때 동아시아 역사를 주도했던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스토리개발과 ‘진정성’ 확보도 백제 역사가 바로 선 기반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백제유적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앞서 바로잡아야 할 백제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 교과서부터 다시 검증해야= 백제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부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국사 교과서가 백제 역사를 실제와는 다르게 왜곡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이도학 교수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사교과서가 백제의 건국 뿌리부터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과서는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남하해 백제를 건국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실제 백제인들은 고구려가 아닌 부여에서 백제의 기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삼국사기 등을 살펴보면 백제인은 부여에서 뿌리를 찾고 있지만 교과서에는 이런 사실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고 백제 건국 세력을 고구려 계통으로만 간주고 말았다”며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백제가 고구려에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허황된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백제 건국 세력에 대한 편중된 서술은 백제사를 왜곡해 해석하는 단초가 됐다는 설명이다.

백제가 지도층의 부패로 인해 패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백제의 멸망과 관련해 의자왕과 삼천궁녀에 대한 일화는 백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이와 관련 공주대 이남석 교수는 의자왕이 삼천궁녀와 향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다 백제가 망했다면 백제부흥운동이 일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폭정을 하던 왕이 없어졌다면 기뻐해야 할 백제인들이 오히려 일본에서 왕을 다시 데려와 백제 부흥운동을 했다는 점은 모순”이라며 “또 일화의 내용대로 삼천궁녀를 거느릴 정도의 국력이면 의자왕이 정치를 매우 잘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단적인 예다. ‘패망국’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백제역사에 대한 인식 전반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 부족한 검증자료, 기존유물에 대한 재해석 작업 필요= 백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이유 중 하나는 백제역사를 연구할 자료가 매우 미흡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백제인이 기록한 역사기록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보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백제연구가 진행 될 수밖에 없었다.

신라 등 외부의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를 중심으로 백제사 연구가 진행되면서 왜곡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할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료가 없다면 기존에 발굴된 유물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명대 노중국 교수는 “최근 부여 궁남지나 능산리 일대에서 나오고 있는 목간자료와 금석문 등을 면밀히 살피면 기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내용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며 “이들 유물을 통해 백제인들의 생생한 실제 생활모습과 생활 문화사 등을 연구하면 정치, 외교, 전쟁외의 백제역사를 재구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기존에 발굴된 유물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면 다양한 생활·사회상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백제의 관에 새겨진 새 날개 모양의 장식을 두고도 어떤 새를 형상화 한 것인지, 왜 그런 장식을 했는지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이어가면 당시 백제인의 사유와 사상을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노교수는 최근 복원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백제 금동관에 장식된 새가 ‘매’라고 밝혔다. ‘응준(鷹準)’, 즉 매의 나라로 불렸던 백제가 금동관에 매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는 주장이다. 매를 신성시했던 백제의 문화를 기존 유물에 대한 재해석으로 이끌어낸 사례다.

시각을 달리하면 기존의 발굴 자료를 두고도 백제역사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발굴된 백제 그릇 등에서 나오는 곡물, 과일 씨앗 등은 백제의 농업상뿐만 아니라 당시 백제인들의 민간요법, 약제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백제 역사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성(서울)백제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일반 대중에 대한 홍보 역시 풀어야할 숙제다.

500여년의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성백제의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때마침 서울시가 한성백제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를 가지고 있는 충남에서 축적된 백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시와 합동으로 한성백제박물관 건립에 도움을 주고 한성 백제를 알리는데 나서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사항이다.

◇ 재해석된 역사자료 토대, 흥미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져야= 전문가들은 왜곡된 역사에 대한 재검증 작업과 함께 백제의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꾼을 양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흥미로운 백제이야기가 만들어져 일반에 퍼진다면 왜곡된 백제역사를 극복하는 한편, 백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이야기의 질이다. 대중이 공감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 바탕이 돼야 한다. 학계 등 딱딱한 전문가 집단에 흥미로운 이야기 구성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창의적인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 공모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강종원 박사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결국 역사적 사실을 문화상품화 하는 것으로 창의적이고 다양한 의견이 모아져야 한다”며 “공모전을 통해 다양하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모으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창작은 관심도에 따라 달라진다. 공모 상금을 대폭 확대하면 질 좋은 작품과 작가들이 대거 몰릴 것”이라며 “결국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려면 그에 따르는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근초고왕’과 같은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대중의 시선을 단번에 모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투자도 큰 효과가 기대된다.

박병준 기자 joonzx@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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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이동 백제고분군.
서울 방이동 백제고분군.
부여 궁남지.
부여 궁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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