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태니커’에서 “어떤 구상이나 작업계획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과정 또는 마음속에 이미 세워져 있거나 밑그림으로 나타낸 구상이나 계획 자체”라고 한 것.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일반적으로 응용 미술, 엔지니어링, 건축과 여러 창조적인 노력을 하는 분야에서의 맥락으로 쓰이는 새로운 물건을 개발하고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 것. 비슷하면서도 뉘앙스에 차이가 있는 이것은 다름 아닌 ‘디자인(design)’에 대한 정의다.

이처럼 정의는 되었지만, 난해한 개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개개인의 이해 정도, 적용 분야, 시점에 따라 ‘디자인’의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디자인의 어원은 ‘지시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사인류의 지적표현물인 벽화 등에서 볼 수 있듯 디자인은 오랜 기간 미술이나 예술분야에서 주로 쓰였고, 미술에서는 밑그림이나 구상, 예술에서는 표현양식으로 이해됐다. 산업화 이후 기계, 자동차, 건축 등 산업분야에서 디자인은 주로 모델, 계획 등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고도의 지식정보화사회인 현재 ‘디자인’은 더욱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디자인이 부각된 적이 있었을까? 예술, 산업은 물론 우리의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은 이제 하나의 패러다임, 창의와 혁신을 이끄는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키워드가 되었다. 혁신은 그동안 크게 두 가지 방식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하나는 제품의 부가가치를 기술을 통해 실현하는 ‘기술 중심의 급진적 혁신’이고, 다른 하나가 ‘시장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점진적 혁신’이다.

고객의 니즈를 분석, 대응하는 점진적 혁신에서는 마케팅이 중요하다. 그러나 ‘디자인이 주도하는 급진적 혁신’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혁신 그 자체가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디자인 분야 베스트셀러인 ‘디자이노베이션’에서 저자 로베르토 베르간티는 디자인의 혁신성에 찬사를 보낸다.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의 혁신경영 전공교수인 저자가 디자인 중심 혁신의 성공사례로 드는 기업은 IT기업, 전통기업을 망라한다. 이 가운데 뱅앤올룹슨은 60-70년대 조립된 전자시스템을 의미하는 하이파이(hi-fi)를 가구의 일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덴마크 디자이너 자콥 젠슨이 뱅앤올룹슨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GE(General Electric)에 견본품을 보여주었으나,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된 바로 그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이 회사는 이후 30년 이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추구하는 방식도 그가 꼽는 디자인혁신의 대표 사례이다. 그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 또는 필요로 하는 것을 묻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며 무엇을 바라게 될지에 대한 그의 직관과 확신을 전달할 뿐이다. 애플의 아이팟과 스마트폰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음악 감상과 핸드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기존 시장의 룰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디자인 중심 전략이 혁신가치 극대화의 정답인지, 얼마나 지속될지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IT분야 세계기업의 성공사례에서, 예술·산업 등 각 분야의 선도적인 혁신 성공사례에서 적어도 지금은 가장 유효한 전략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거점인 기존 대덕연구단지를 뿌리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혁신경제 창출의 거점이다. 혁신가치 창출을 위한 방법론이라는 틀로 바라다보면 ‘기술 중심의 급진적 혁신’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덕특구에서 기술을 통한 혁신에서 더 나아가 디자인 중심 혁신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기술혁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혁신을 통해 혁신가치 창출의 새로운 지렛대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특구지원본부는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40여 개 기업의 제품디자인을 지원했다. ‘토털디자인 지원사업’으로 통칭되는 이 사업은 R&D 기획단계부터 디자인개발, 마케팅지원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합해 종합 지원하는 디자인 중심 혁신창출 지원 프로그램이다.

지원성과도 상당하다. 일례로 실험대를 제조하는 전문업체 CHC LAB는 고딕체의 실험실을 편안한 느낌이 들도록 디자인한 ‘My Room’ 개념의 실험대 출시로 올해 15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특구본부는 앞으로 디자인 지원사업에 대한 집중적이면서도 보다 전략적인 지원에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미 이노디자인, 다담, 탠저리앤파트너스 등 국내 유수의 디자인 전문기업이 특구에 입주해 기업현장 밀착형 지원의 틀을 갖추었다. 올해부터는 특히 R&BD 성격의 모든 특구육성사업 부문에 5%의 디자인 예산을 반영하는 등 디자인 중심 혁신을 강화할 예정이다. 기술 중심 혁신과 디자인 중심 혁신이 융합된 혁신비즈니스 성공모델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재구<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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