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자전축이 10㎝ 이동하였다는 규모 9.0의 초대형 지진과 쓰나미가 지난 11일 이웃 나라 일본의 동북부를 강타하였다. 이번 강진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5만 배가 넘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처음 일본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간단한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솔직히 해묵은 역사의 앙금 때문에 독도나 정신대 할머니를 먼저 떠올렸으나, 그 재난의 규모가 어떤 영화가 묘사한 극한 상황보다 더 처참함을 알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 겪는 이번 재앙은 특정 국가 간의 문제를 뛰어넘어 ‘인간과 자연’이라는 원초적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교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전 세계에 충격적으로 일깨워 준 것이다.

더욱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폭발에 따라 확산되는 방사능의 위협과 공포가 ‘인간과 핵’의 대결로 치달으면서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핵재앙의 잠재적 위험성이 우리 인간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최초의 원폭이 투하된 일본이 핵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면서도 전력의 40%를 원자력에 의존하여 왔는데 이번에 원전 폭발로 패닉상태에 빠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 세계는 미증유의 재난 속에서 처절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인류애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도움에 나서고 있다.

한국 사람들도 이웃 나라의 재난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제일 먼저 달려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정신대 할머니들까지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였고 독도 문제로 반일 캠페인에 앞장서던 단체까지 마음을 열고 일본 돕기 성금 모금에 앞장설 정도이다.

우리들은 이번 대재앙을 계기로 가깝고도 먼 일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차분하게 질서를 지키는 일본인,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인내와 절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전 세계가 이러한 일본 국민들의 모습에 찬사를 보냈다. 일본인들의 투철한 시민정신, 일본 언론의 성숙한 자세를 부럽게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어떠할지 생각할 때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정부를 먼저 불신·비난하면서 남탓을 하고 사재기, 새치기, 고성과 소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번 재난 속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더 가까운 나라로 다가왔고 간혹 일본의 속살도 보였다. 지나친 매뉴얼 사회인 일본의 융통성 부족, 이재민 대책이나 구호품 보급의 비효율, 역동적 리더십의 빈곤 등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아니나,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일본 사회와 같은 성숙한 시민 정신을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다.

이번 재난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단군 할아버지께서 비교적 안정된 땅인 유라시아판(板) 위에 나라를 건립해 줘서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만 지진 무풍지대란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국내 건물의 82%가 내진 설계 없이 건립되었고 전력의 36%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어 유사시 어떤 재앙을 만날지 걱정이 된다.

최근 북한이 백두산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해 왔다. 백두산의 재폭발이 3-4년 내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만큼 소홀히 넘길 일도 아니다. 실제로 백두산은 10세기경 대규모 분화를 시작한 이래 1903년까지 여러 차례 재분화하였고, 그 분화가 발해 멸망을 초래했다는 가설에 비추어 한반도에 큰 변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재앙은 북한 핵 문제이다. 북한은 어쨌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그것이 비이성적인 북한 지도자의 수중에 있는 한 언제 어떻게 사용되어 인류의 재앙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간은 자연 앞에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핵이라는 인재(人災)에 대하여는 인류가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선용하는 길을 찾아내는 한편, 자연의 반격을 불러오는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영화 아마겟돈처럼 인류 또는 지구에 대한 재앙은 예측할 수 없다.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은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쳐 인류를 위협하는 큰 재앙을 막아내야 할 것이다.

27년간 감옥에 있다가 출소하여 결국 대통령이 된 역경의 리더 남아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인간의 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 그곳에 삶의 의미와 가장 큰 영광이 존재한다.”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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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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