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도시마다 지명 외에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울 신촌은 ‘젊음의 거리’, 명동은 ‘쇼핑의 거리’, 부산 남포동은 ‘영화의 거리’로 부르는 식이다. 이러한 별칭은 그 도시의 이미지를 강화시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비슷한 업종을 더욱 한곳에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브랜드 가치는 더욱 올라가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이제 도시는 점차 비슷한 영역의 산업을 한곳에 모아 공간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 영역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지역에 각자 존재하던 출판사를 한곳에 모아 새로운 문화단지를 조성한 ‘파주출판단지’,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사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조성한 ‘헤이리 예술마을’이 대표적이다. 이곳들은 모두 수도권에서 떨어진 외곽지역에 자리 잡고 있지만, 다양한 문화예술을 한곳에서 접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럽의 작은 도시 빈이 세계 1위 컨벤션 개최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회의 공간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빈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등의 수작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이 밀집되어 있어 다장르 문화복합공간이라 할 만하다. 세미나 혹은 회의를 마치고 음악, 미술, 공연이 총망라된 문화공간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세계인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에는 ‘베이징판 소호(SOHO)’로 불리는 ‘789 예술거리’가 새로운 명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북경 북쪽의 대산지역에 위치한 이 거리는 본래 군사무기 전자공업의 공장지역이었다. 그러나 2002년부터 예술가들이 빈 공장을 개조해 디자인, 출판, 전시, 공연, 아틀리에 등 문화사업을 개발해 지금은 명실상부한 문화특구로 자리 잡았다. 베이징시 역시 이곳을 중국 현대예술의 근거지로 만들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인 결과,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만도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고 한다.

우리 대전에도 이에 못지않은 공간이 있다. 둔산지역에는 한밭수목원과 천연기념물센터로 상징되는 대자연의 공간 속에 대전예술의 전당,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과 같은 문화예술공간이 존재한다. 또 뒤로는 갑천이 흐르고 드넓은 엑스포 과학공원이 펼쳐져 있다. 문화공간에 녹지공간까지 확보되어 있는 진정한 시민들의 쉼터이자 대표적인 문화거리인 셈이다.

최근 대전시가 국악을 대전의 문화아이콘으로 정하고 국악전용 연주홀인 대전국악원 건립을 추진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만일 이러한 공간 옆에 국악당이 세워진다면 명실상부한 대전문화예술공간으로 어우러져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음악, 미술, 공연 등 다장르 문화복합공간은 시민들의 발길을 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 사이에도 다양한 교류가 형성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공간에 전통한옥 건물의 국악당이 들어선다면 현대문화예술과 전통문화예술의 공존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세대 간의 조화 역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전은 카이스트를 비롯한 국내 최고의 대학들과 과학산업의 중심인 대덕연구단지, 대덕테크노밸리 등이 존재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터전이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위치하며 지적생산이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대전에서는 세계과학단지연합(IASP) 총회 등 34건의 국제행사를 비롯한 모두 485건에 달하는 국내외 행사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로 인해 이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국악당을 비롯한 문화예술공간은 새로운 대전의 매력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우리 국악은 조상들의 혼이 담겨 있는 소중한 전통예술이자 앞으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문화유산이다. 그렇다고 박물관 속 문화재처럼 고이 모셔둬야 할 유물은 아니다. 현대문화예술과 공존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야만 우리 국악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국악당이 대전 문화예술단지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해본다.

윤철호<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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