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주민협의체 중심 교육·홍보활동 적극 펼쳐야

공주·부여 백제역사문화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본등재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현지 주민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특히 전북 익산 백제유적지구까지 포함되면서 문화재청 중심의 세계유산 추진은 어렵게 됐다. 충남도와 공주, 부여, 전북 익산시 등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똘똘 뭉쳐 도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됐다.

지차체 차원에서 백제 역사문화유적을 있는 그대로 유네스코에 알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세계 굴지의 역사유적지를 간직한 국가들과 겨루려면 시간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실타래를 푸는 건 주민들의 몫이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백제유적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데 힘을 보태달라는 식의 구호는 효과가 없다. 제대로 된 주민 참여 방안을 그려 내야 한다.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2002년 한·일 월드컵은 공통의 관심사가 얼마나 큰 위력을 갖는지를 보여줬다. 축구 하나로 오랜 세월 잠재된 레드 콤플렉스까지 날려버렸다. 월드컵 붐의 뒤에는 온 국민의 참여가 있었다. 백제를 세계유산에 등재시키려면 ‘백제’가 온 국민의 공통 관심사가 되야 한다.

백제유적이 실질적인 주민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

부여 문화재보존센터 이동주 박사는 “세계유산이 되면 재산권을 침해 받고, 건물 짓기도 힘들고, 관광객 때문에 생활이 불편해 질 것이라고 반대하는 주민도 있다”며 “이런 다양한 목소리를 최대한 수렴하고, 세계유산 관련 정책을 내놓을 때 환영받을 수 있도록 의지를 심어주는 일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불국사·석굴암, 양동마을, 신라유적지 등 세계유산을 3개나 등재시킨 경주의 경우 처음엔 고도보존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를 극복한 것이 주민협의체다.

부여의 경우 (사)고도보존 및 세계유산주민협의회가 발족됐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전문가를 초빙해 주민 교육에 나선다. 유적에 스토리를 입히고, 주민교육을 하고, 정보를 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을 하나로 모으는 창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충남도가 적극 지원할 것은 바로 이런 소통의 창구다.

이 박사는 “IOC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만 봐도 주민들이 자발적인 서클을 구성해서 환영인사도 하고, 캐리커쳐도 만들어 붐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런 액션들이 어찌보면 너무 작위적이고 뻔해도 실사단에게는 엄청난 감동과 깊은 인상을 심어 준다”고 강조했다.

◇범 아시아 백제 도시 모임 조직해야=백제 혼을 간직한 범 아시아 도시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것도 해법이다. 2005년 유네스코 등재에 성공한 ‘강릉 단오제’는 좋은 사례다. 강릉시는 2004년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ICCN) 창립을 제안했고, 2008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첫 창립총회를 연다. 그동안 사무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세계 속의 무형문화유산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했고, 2005년 단오제를 세계유산에 등재시켰다.

해상 제국 백제는 가까이는 일본과 중국, 멀리는 필리핀까지 연관되는 유적이 즐비하다. 사찰, 씨족 단위의 연계도 가능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필리핀에서 백제 부흥운동의 선봉 흑치상지의 고향을 찾을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흥이 나는 축제 열어야=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주민 참여 열기를 고조시키는데는 ‘축제’를 빼 놓을 수 없다. 중국 은허 유적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은허와 연관된 음악제나 연극제를 개최했다. 조그만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도 함께 했다. 세계유산 실사단은 이런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 평가했다.

백제유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테면 금동대향로에서도 아이템을 뽑아낼 수 있다. 향로에 부조된 백제 오악사의 악기를 통해 서동요나 정읍사를 읊을 수 있다. 이를 연극으로 창작하고, 일본의 사미센처럼 전통 악기 연주회를 열어 볼거리, 들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충남도는 백제 음원을 이미 복원했다.

SNS 등 네트워크를 이용해 세계 속에 감춰져 있던 백제의 발자취를 찾아내는 이벤트를 여는 것도 방법이다. 이벤트를 지원하는 지역 기업, 기관들의 스폰서도 필요하다. 현재 공주와 부여에는 역사문화도시 조성 사업 등 백제문화와 유산을 매개로 한 대형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기업의 타이틀을 붙인 행사가 속속 기획되야 한다. 충청도에는 한화, 웅진, 경남기업, 계룡건설, 선양 등 굴지의 향토기업이 있다. 백제유적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애향심을 발휘하고, 호소해야할 기회인 셈이다.

◇대중 위한 국제학술대회 개최=학술대회라면 일반인들은 고개부터 흔들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어렵기 때문이다. 딱딱한 껍질을 벗겨 속살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학술대회가 필요하다. 스토리텔링을 제시하는 학술대회라면 금상첨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고고학에 치우친 국제학술대회보다는 인문학적 학술대회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전문가와 교수들만 알고 있는 백제 이야기를 대중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공주대나 충남대, 전통문화학교 등 지역 유수의 대학 기관의 협조가 절실하다.

내친김에 백제 테마파크(가칭)를 조성해 어린이들에게 ‘백제문화=세계문화’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작업과 역사 교과서 속 왜곡된 백제 이미지를 벗겨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의자왕=향락군주’라는 고정관념은 곤란하다.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 속에서 의자왕이 처한 시대상을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보여주는 일이야 말로 세계유산 등재보다 값진 일이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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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백제전 행사 모습.
세계대백제전 행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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