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돌아보면 국가(國家) 만큼 모순 덩어리도 없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세금과 병역을 부담하게 하고 온갖 것을 참견한다. 땅에도 갖가지 명분을 붙여 개발과 이용을 제한하고 집을 짓는데도 터의 넓이와 성격에 따라 건축 면적을 허가한다. 차량의 속도를 제한하고 일정한 방향으로만 다니게 강요한다.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18세기 유럽에서 왕정제도가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국가의 권력이 비대해졌다. 국왕 대신 국가라는 가공할 힘을 갖춘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폭군이나 독재자에 이르면 국가는 정말 폭력 덩어리로 돌변한다. 권력과 공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굴종을 강요하고 제멋대로 목숨까지 거둬가는 폭력조직이 되는 것이다. 통치의 정점에 선 독재자나 폭군이 국가라는 거대하고 합법적인 폭력조직을 앞세워 백성을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행정이나 경찰, 정보기관, 군대는 백성을 탈취하고 억압하는 수단일 뿐이다.

요즘 리비아와 북한을 보면 국가의 가치가 왜곡되고 기능이 마비되면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모든 국민이 나를 사랑한다. 그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것이다.”

TV 화면에 나타난 리비아 국가원수 카다피의 말이다. 외국에서 용병을 끌어와 시위대를 무차별 학살하고 친위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폭격하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카다피는 온 나라가 전화(戰禍)에 휩싸이고 하루에도 수백 명의 백성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궤변을 쏟아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김 위원장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되고 리비아 카다피가 퇴진 위기에 몰리자 지난달 17일부터 자취를 감췄다가 27일에야 나타났다. 최근 김 위원장이 거주하는 관저 주변에 수십대의 탱크가 배치됐다고 한다. 북한은 김정일의 재등장에 맞춰 ‘핵전쟁 불사’ ‘서울 불바다’ 등 금방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강경한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카다피와 김정일의 행태를 보면 연민과 실소가 터져나온다. 무소불위의 황제보다 더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들이 살기 위해 허둥대며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게 희극처럼 느껴진다.

카다피와 김정일은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독재자들이다. 1987년 집권 이후 물가가 2억%나 오르고 실업률이 85%에 이르는데도 건재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나 1988년 3000여명을 죽이고 집권한 채 백성들에게 국민소득 100달러의 삶을 강요하는 미얀마의 탄쉐도 이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42년간 장기 집권해온 카다피는 모든 권력을 자신과 그 아들들이 쥐고 흔들어왔다. 행정과 군의 핵심 요직을 장악한 채 정적을 탄압하고 치부를 해왔다. 유럽과 미국 등 외국에 빼돌린 자산이 407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사태에서는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으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북한도 리비아 못지 않다. 2400만명의 국민 대다수가 절대 굶주림에 허덕이며, 인간이 가축처럼 풀을 뜯어먹고 심지어 인육까지 먹는다는 루머가 등장했다. 6개의 정치범수용소에는 15만여 명이 수감돼 있고, 곳곳에서 백주에 공개총살이 자행된다.

이쯤 되면 국가는 백성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 필수적인 책무는 백성을 먹여 살리고 백성의 생명과 재산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만 주는 게 어찌 나라가 일 수 있겠는가!

순자(荀子)의 말 중에 “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君舟 民水)”이 있다. 물이 배를 띄우지만, 물이 분노하면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는다는 얘기다. 순자의 말처럼 분노한 백성이 희대의 폭군을 타도하여 정의롭고 따뜻한 나라를 세우면 좋겠지만 사정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국가라는 거대한 폭력집단을 무너뜨릴 힘과 구심점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오랜 동안 철저한 독재로 정치적 대안 세력을 없애고 정적들을 숙청해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많은 백성이 죽고 나라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미국과 유엔이 독재자를 응징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금세 효과를 나타낼 것 같지도 않다. 독재자들이 여전히 건재한 국가조직을 앞세워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은 지금 이 순간도 어둠 속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굶주림과 죽음에 공포에 떨고 있다. 신(神)이여 도우소서! 그들이 희망을 끈을 놓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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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대전일보 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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