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아 보이던 중동, 아프리카의 독재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란 이름으로 불기 시작한 민주화의 바람이 이집트, 예멘, 리비아, 바레인, 알제리 등에 휘몰아치고 있다.

왕정국가인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신정(神政)국가인 이란 등에서도 민주화의 불씨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마치 80년대 후반 동유럽에 일었던 거대한 변혁의 물길을 연상케 한다.

현재까지 튀니지와 이집트가 민주화 혁명에 성공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민주화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운 만큼 이를 억누르려는 압제자들의 핍박 또한 거세다. 특히 리비아의 경우 시위 진압을 위해 전투기와 용병까지 동원하는 등 초강경책을 쓰고 있다.

유엔, 미국 등 국제적인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42년째 리비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카다피 국가원수는 지난달 22일 TV연설을 통해 ‘순교자로 죽겠다’며 퇴진을 거부하고 있어 리비아 민주화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란 경찰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집회도 허용치 않겠다고 당국자가 밝히는 등 민주화 요구에 귀를 막고 있다.

민주화의 길이 멀고 험난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꽃은 꺾어도 봄은 꺾을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압제자의 핍박이 아무리 거세도 한 번 움튼 민주화의 싹은 결코 시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민주화의 도도한 물길을 되돌릴 수 없음은 자명하다.

70년대 말 남유럽에서 시작된 민주화는 중남미와 아시아의 권위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90년대에는 동유럽의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의 바람 또한 이러한 역사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 중남미나 아시아에서 있었던 경로와 일부 상이함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말하는 민주화는 세 단계, 또는 세 수준이 결합된 복합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즉 자유화, 민주화 그리고 사회경제적 민주화(오도넬 등은 이를 ‘사회화’로 규정하였으나, 개념상 혼돈과 오해의 소지가 있어 이 용어로 대체 사용)의 단계들이 서로 결합됨으로써 민주화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자유화는 기본적인 인권과 정치적 자유의 보장, 정치활동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화는 시민권을 보장하는 과정으로서 경쟁적 선거 등 민주적인 정치과정의 제도화를 말한다. 한편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정치영역뿐만 아니라 공정한 분배 등 사회경제적 평등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의 과정은 각 단계들이 혼재되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자유화와 민주화의 요구가 동시에 폭발하고,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일자리와 임금인상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화와 민주화가 어떻게 다른가 또는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차이점을 이해한다면 현재 아랍권에서 진행되는 민주화 과정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정치학자인 길레르모 오도넬 교수가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는 개인주의 문화가 없기 때문에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그렇지만 이들 지역에서도 독자적 경로를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언급한 데서도 엿볼 수 있듯이, 민주화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도 같기 때문에 정형화된 틀이나 경로대로 진행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봄이여 어서 오라, 햇살 가득 안고서 얼음장 밑에 물고기의 심장이 얼기 전에 봄이여 어서 오라”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전체주의적 압제 하에 있는 민중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봄은 다름 아닌 ‘민주화’일 것이다. 아무쪼록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 열풍이 더 이상의 상처와 아픔 없이 민중들의 승리로 귀결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만리장성을 넘어 동토의 땅 북녘에도 새봄의 훈풍이 불기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간절히 소망해 본다.

염홍철 대전시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