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유럽의 거리에서 흐르던 랩소디(rhapsody)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난 이방인이었음에도 전생의 인연이 닿았던 것처럼 친숙했다. 이국적인 풍경과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 위에 수놓은 듯 흘러가던 푸른 강까지 어느 것 하나 눈부시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여정에서 돌아와 일상의 흐름에 접어든 지금도 이국의 거리를 거닐던 아름다운 기억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

거기엔 역사의 흔적이 잘 스며 있다. 잘츠부르크의 어느 건물의 처마에 적혀 있던 숫자 ‘1286’은 숫자만큼 장구한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반만년의 역사, 찬란한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 역사도 가지지 못하는 세월들이었다. 전통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유럽 사람들. 그 문화의 향기는 진실로 짙은 장미향과 같은 것이었다.

로마는 내 인생에 있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도시였다. 갈증에 몸부림치는 사람처럼 온종일 도시의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그 옛날 로마제국의 찬란함을 말해주는 콜로세움과 현대 이탈리아의 상징 에마누엘레 2세 기념탑, 오래도록 로마의 번영과 쇠망을 목도했을 테베레 강, 제정의 시조 아우구스투스의 영묘, 천년의 다리 아일리우스 등 그 정경이 아직도 가슴을 맴돈다. 그리고 포로 로마노. 제국의 영욕을 함께한 그 심장부에서 난 이미 코스모폴리탄이었다.

비로소 난 감상을 접어 두고 유럽의 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 유럽의 출발이자 뿌리인 로마에서 그 옛날 로마인들이 왜 세계를 제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토록 오랜 시간 유럽을 다스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떠올랐다. 아마도 그 이유들은 대한민국이 이제 걸어야 할 길일 것이다.

로마는 다신교사회답게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했다. 자신들의 종교뿐만 아니라 패배자들의 신앙도 인정하여 30만이 넘는 신을 섬겼다.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피지배 민족의 주체성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 로마가 천년왕국을 이룬 원동력이었다.

계급 간 활발한 신분 이동과 수평적인 관계 또한 인상적이다. 신분제 사회지만 능력이 있으면 신분상승의 기회가 주어지고 귀족과 황제도 결코 꿈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제도와 황제에게 직접 상소해 재판받을 수 있는 인권존중, 당시 국제 공용어인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 지구 2바퀴를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완비된 도로와 상하수도, 국가의 위기에 앞장서 참전하여 전사하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역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을 다시금 실감했다.

다시 현실에 온 지금, 짧은 시간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유럽의 과거를 통해 조국의 현재를 보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한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평생을 안게 될 고민이 생겼다.

다시, 삶은 시작됐다.

*김태경 목원대 역사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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