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백제문화 만들기… 다양한 ‘볼거리’ 확보 절실

일본 아스카 비조수락 유적 복원 모습.
일본 아스카 비조수락 유적 복원 모습.
20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백제의 수도로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백제와 부여. 그러나 과거의 찬란한 역사에 비해 현재 눈에 띄는 유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2600여 점이 넘는 부장품이 출토된 공주의 무령왕릉을 제외하곤 나머지 유적지는 밖으로 드러나는 볼거리가 부족 한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백제 유적이 앞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본 등재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발굴을 통해 가시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백제유적= 백제유적이 신라와 고구려 유적과 비교해 남아있는 유적이 적은 이유는 나당 연합군의 공격과 무관치 않다. 백제를 제압한 당나라 소정방이 당시 도읍이었던 사비(부여)를 침공한 뒤 정림사지 5층석탑에 새긴 ‘대당평백제국비명’에는 백제를 초토화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연합군의 공격으로 일주일이 넘게 사비성이 불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여기에 1400년이라는 긴 시간은 목조유적이 대부분인 백제의 유적을 하나 둘씩 지워갔다.

이 같은 이유로 현재 전해지는 백제유적은 석탑, 성벽 등 석조유물이 대부분이다.

부여의 사비성도 나성과 부소산성은 형태를 가늠할 수 있지만 왕궁지의 경우 그 위에 현재 부여 시가지가 형성돼 아직 본래 형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 다양한 전시기법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유적이 적은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에 볼거리를 더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 방침은 ‘동결보존’이다. 유적을 왜곡하지 않고 보존하겠다는 취지인데 매장유적은 이 같은 방침이 독이 될 수 있다.

매장유적의 경우 발굴조사 후 복토해 잔디를 씌우다보니 실제 유적지에는 잔디와 유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게시판만 덩그러니 놓인 경우가 허다하다.

부여문화재보존센터 이동주 박사는 “유적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유산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유네스코 실사단에 백제문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백제유적을 좀 더 가시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실사단에는 유럽 등 동아시아 문화에 익숙지 않은 다양한 위원들도 포함되는 만큼 백제문화의 특수성을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재현 및 복원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유적 전체를 원상태로 복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와 유사점이 많은 중국 은허유적의 경우, 학계의 고증을 거쳐 확인된 역사적 사실을 신식 전시기법을 통해 가시화했고, 2006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 등재를 허락 받았다.

유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의 재현은 볼 꺼리 제공은 물론 유적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유적은 부분 복원(재현)이나 완전복원을 통해 평면유적이 아닌 3차원의 입체적 유적경관을 조성하는 것도 고려해 볼 사항이다.

다만 과도한 복원은 오히려 세계유산 등재에 해가 된다. 북한의 고구려 유적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구려 유적은 중국 내 고구려 왕릉과 귀족릉, 북한 내 고분군이다. 북한은 역사성을 해치는 과도한 정비로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 등재 보류 판정을 받기도 했다. 동명왕릉을 과장해 복원하고 증명할 수 없는 고분을 온달 장군의 묘라고 안내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전문가위원회로부터 진정성을 거스른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결국 문제는 고증이다. 유적의 진정성을 해치지 않는 복원을 위해서는 고고학자뿐만 아니라 발굴조사자, 문화재정비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이 필수적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이훈 실장은 “복원은 유적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그 전에 (복원이)세계유산 등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국내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전문 고증에 맞춰 복원작업이 이뤄져야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진정성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기법을 이용한 유적 재현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보급되고 있는 스마트폰, 테블릿 PC, 특수 안경 등의 최첨단 IT 기기를 활용해 유적의 모습을 가상현실로 보여주는 식이다.

예컨대 부소산성에 올라 스마트 폰 등으로 부여 시가지를 비추면 스마트폰 화면에 과거의 왕궁지와 절터 등이 표현 되거나, 기단밖에 남지 않은 유적지를 비추면 건물과 함께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3D 화면이 재현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유적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도 과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향후 백제와 관련한 새로운 학설이 나올 경우 재현물 교체도 비교적 쉽다는 장점이 있다.

또 다국적 언어로 유적과 관련된 스토리를 전달 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 IT 강국으로 알려진 한국의 이미지와도 부합한다는 평가다.

◇ 중요해지는 보존관리계획 = 최근 들어 유네스코는 유적의 진정성과 함께 보존관리 계획을 더욱 엄격히 심사하고 있다.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사후관리계획이 세계유산 등재에 결정에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는데 충실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드렌스덴 엘베계곡의 경우 지난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독일정부가 계곡 주변에 인공조형물인 다리를 건설하면서 원형이 훼손돼 지난해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삭제 결정을 내렸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에 실패한 대표적 예다.

박병준 기자 joonzx@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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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은허왕궁지는 나무를 심어 왕궁지를 알기 쉽게 표현했다.
중국 은허왕궁지는 나무를 심어 왕궁지를 알기 쉽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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