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 속 서동, ‘마보’로 해석해야

궁남지
궁남지
부여읍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연못이 있다. 연못의 이름은 마래방죽이다. 방죽의 북쪽에는 마을이 있는데 마골(薯谷)이다.

마을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집이 가난해 어려서부터 마를 캐서 장에 내다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했다는 ‘마보(薯童)’라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전설은 마보가 태어나 자란 곳이어서 마골이 됐고, 그 어머니가 살던 집 앞의 연못이 ‘마보방죽>마 아해(아이) 방죽>마래방죽’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마래방죽이 바로 백제 별궁의 연못인 궁남지(宮南池)다. 마보는 백제 30대 왕인 무왕(武王)이다. 무왕의 출생설화에는 부친인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연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龍神)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무왕이라는 것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마보 이야기의 무대인 마래방죽(궁남지)의 조경기술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源流)가 됐다고 전한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다. 신라 경주의 안압지보다 40년이 빠르다.

마보에 관한 이야기는 또 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향가 서동요(薯童謠)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짧은 구절이지만 노래 하나로 백제 무왕은 당대 최고 미녀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서동은 잘못된 독해라는 점이다. 향가 서동요의 가사는 신라말일지라도 서동은 백제어로 풀어야 한다. 백제인이기 때문이다.

도수희 교수는 “백제 무령왕이 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마(斯麻=島)라고 불렀듯이 무왕도 마보라고 불렀을 것”이라며 “그동안 서동을 마동으로 해석해 왔는데 한 단어를 놓고 음독과 훈독을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아이 동(童)의 훈이 고대어에서는 ‘보’였다고 설명한다. 그 예로 장보고의 어릴적 이름은 궁복(弓福)이다. 궁복은 ‘활보’로 풀이된다. 신라 청년인 궁복이 당나라에 들어갔을 때 마땅한 성씨가 없어서 만든게 장(張)씨다. 이름 궁복의 활 궁(弓)을 넣은 성씨다. 이름인 복자도 중국식 발음으로 적다보니 보고(保皐)가 됐다는 것이다.

서동요에는 서동은 없다. 백제 이름을 가진 ‘마보’가 있을 뿐이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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