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 총장 송용호

졸업이라는 단어에는 설렘이 있다. 목표한 무엇인가를 끝내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는 흥분을 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가 생겼다는 기쁨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그러면서도 학교라는 좁은 공간, 통제된 시스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어쩌면 졸업은 축제, 때로는 일탈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먼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졸업생들에게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의미를 더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해볼까 한다.

잠시 자신이 몇 년간 머물렀던 교정이라는 공간을 돌아다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나 자신의 생활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 기억 중에는 후회스러운 일도 있을 것이고, 친구와 교수, 그리고 후배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장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교정을 혼자 돌아본다고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닐 것 같다. 그것은 앞으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공간을 둘러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졸업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에 앞서 단 1시간 만이라도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것이 졸업 즈음에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책상을 정리해 보자. 손때가 묻은 교과서와 전공 서적, 노트, 메모지를 자신의 손으로 정리하면서 졸업을 느껴보자. 내가 만든 지난 4년간의 흔적들을 절대 버리지 말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자. 졸업과 함께 교과서나 전공 서적은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반드시 꺼내볼 일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책상과 책들을 정리하는 동안 수년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왔던 고생들을 곱씹어보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토닥거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책상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발의 새 의미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어 보자. 지나간 긴 시간 졸업생들이 밤을 새워 공부한 시간만큼 부모님들도 어려운 시간을 함께하였고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졸업은 곧 부모님의 졸업과 같은 법이다. 가능하면 졸업식장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갖기 전, 또는 그 이후 잠깐이라도 부모님과 마주하여 그동안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자. 굳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부모님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또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평소 다소 소원한 관계였다면 더욱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제안은 몇 년간 겪었던 고생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졸업생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느낌표를 찍어 줄 수도 있다.

요즘 졸업식장에 서는 학생들 모두가 다른 결과를 갖고 있다. 목표한 대학원 진학, 혹은 직장에 들어간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전히 성공한 졸업, 실패한 졸업이라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열과 성을 다해 4년을 노력해 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나 자신만의 목표를 두고 노력해 온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과 열정은 대학에 들어오기 전의 나의 모습에 비추어 본다면 분명 한 단계 성장하는 데 많은 경험과 지혜의 옷을 입게 해 주었을 것이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고,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다. 한 번 지나간 날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졸업생들은 다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지금 도착해 있는 나의 지점은 어느 곳에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현재의 자신을 둘러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노자의 도덕경 45장을 보면 ‘큰 성공은 이지러진 것과 같다. 그러나 그 효용은 끝이 없다. 크게 충만한 것은 빈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의 작용은 다함이 없다’라는 구절이 나오듯이 세상사의 이치가 참으로 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같이 장점이 단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될 수 있다. 매사에 과유불급이듯이 좋은 점도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세상과 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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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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