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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토론토 통신]도시락의 추억

2011-02-16 기사
편집 2011-02-15 06:00:00
 송연순 기자
 yss830@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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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캐나다 언론인

한겨울 초중고교 시절, 조개탄이 벌겋게 타는 난로 위에 급우들이 도시락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밥 타는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맨 밑의 도시락은 숯이 되기 십상. 수업은 뒷전이요 오로지 도시락 먹을 생각에 입에 군침이 돈다. 점심시간, 옹기종기 둘러앉아 즐겁게 도시락을 까먹던 추억을 어찌 잊을까. 장난기 많은 급우는 도시락에 고추장을 뒤섞어 뚜껑을 닫고 마구 흔들어대면 자연스럽게 비빔밥이 됐다. 그 꿀 같은 맛이란…. 성질 급한 친구들은 점심시간까지 못 기다리고 먼저 까먹다가 선생님한테 호통을 받기도.

예전엔 도시락을 ‘벤또’라 해서 보자기에 둘둘 말아 허리춤에 차고 다니기도 했다. 집안이 부유한 편이 못 됐던 필자는 어머니가 늘 싸주던 단골메뉴가 노란 ‘다꾸앙’과 오징어포 무침, 검은 콩자반 등이었다. 지금도 이런 반찬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주 특별한 날 밥에 계란프라이라도 하나 얹어 주면 그것은 최상의 메뉴였다. 유리병에 김치를 싸가는 날엔 국물이 책가방 속에서 흘러 책이 누렇게 변하는 일도 흔했다.

한때는 혼식을 장려한다 하여 선생님이 교실을 돌며 학생들의 도시락에 들어 있는 보리밥과 쌀밥의 혼합비율을 조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흐르지만 그땐 그만큼 쌀밥이 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하얀 쌀밥이 맛이 있고 집안이 괜찮은 급우들은 쌀이 많이 든 도시락을 싸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개중에는 점심을 싸올 형편이 못 되는 급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 사려 깊은 담임선생님은 집안이 넉넉한 친구들을 조용히 불러 도시락을 두 개 싸오도록 부탁했고 가정이 어려운 아이들을 점심시간에 교무실이나 숙직실로 불러다 선생님 곁에서 먹게 했다. 그러면 어린 나이에도 자존심이 덜 상했던 것이다.

어느 정치인은 도시락 싸올 형편이 못 돼 점심시간에 조용히 나가 수돗물을 들이켜 허기진 배를 채웠다고 하는데 그 당시는 아직 수돗물이 없던 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웃음을 산 적도 있다.

이처럼 도시락엔 학창시절의 많은 추억들이 깃들어 있다. 그러던 한국의 각급 학교에서 언젠가부터 점심을 단체 급식으로 실시하게 됐다. 어머니들의 수고가 덜어진 것은 물론이요, 학생들도 따뜻한 점심을 먹게 돼 좋긴 했다. 그러나 점심도시락을 싸주시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점차 멀어지는 손실도 따랐다.

이민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 도시락을 싸줘야 하는 것이었다. 초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점심 메뉴를 고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 특히 한국에서 자녀들 도시락 싸준 기억이 별로 없는 젊은 엄마들은 큰 고민거리다. 아직 고교생 딸을 둔 필자도 일요일마다 그로서리 쇼핑을 나가 아내와 함께 딸의 도시락 메뉴를 고르느라 고심하고 있다.

이곳에선 아직도 학생은 물론,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도시락을 애용하고 있다. 필자도 캐나다에 와서 첫 직장인 꽃 도매상에서 일할 때 점심을 싸간 기억이 난다. 그때 차 안에서 혼자 샌드위치와 콜라를 먹으려니 도저히 넘어가질 않았다. 이게 무슨 청승인가, 하며 눈물이 나려 했다. 자고로 도시락이란 여럿이 둘러앉아 얘기를 하면서 먹어야 제맛 아닌가.

지금 한국에서 새삼 ‘무상급식’ 논란이 치열하다. 집안사정과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 요지다.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이 ‘떳떳하게’ 다 함께 급식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난한 어린이들이 무상으로 밥을 먹으면서 수치심을 느끼거나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것이다. 그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잘사는 어린이들까지 모두 공짜로 밥을 먹여준다는 발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무상급식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혜택이 점심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중상류층까지 돌아간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것이 평등사회는 아니다. 잘사는 계층에겐 그만큼 부담을 많이 지우는 것이 사회적 위화감 해소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도 무상급식이란 없다. 어려운 어린이들을 도우려면 다른 지혜로운 방법이 있지 않을까. 무상급식을 사회적 평등 실현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당연히 재원(財源)이 수반돼야 하며 이는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잘사는 계층은 당연히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선진국의 복지가 높은 것은 그만큼 상위계층의 세금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이 과연 그런 수준까지 와 있는가. 어떻게든 세금을 빼먹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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