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목원대학교 총장

조직 사회에서는 이런 저런 회의가 자주 열린다. 하나의 조직체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면 한 사람의 의견이 아무리 확실하게 보이더라도 여러 단계의 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다 할 수 있고, 일의 성패에 대해 뒷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몹시 분히 여기고 심지어는 서류를 내던지고 회의장을 나가는 사람을 가끔 본다. 놀랄 일도 아니다. 본래 의견이란 이런 격정(激情)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지식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의견이다. 이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상상한 것이거나 추측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대상에 대해 충분한 관념을 갖지 않은 상태, 즉 대상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가지고 그것이 곧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베이컨이 말한 네 가지 우상과 다를 바 없다. 즉, 생각이나 희망을 사실이라고 믿는 종족의 우상, 말뜻을 잘못 이해해 버리는 시장의 우상,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히는 동굴의 우상, 사상의 체계나 학파에 대해 맹신하는 극장의 우상과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는 어떤 것을 이해했다고 확신하는 데서 오는 믿음인데, 이것은 앞의 의견보다는 대상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이해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은 대상이 ‘무엇임’을 말하기보다는 ‘무엇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으로, 대상의 사실 여부보다는 대상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역시 격정의 원인이 된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지식이다. 머릿속에 온갖 잡다한 지식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의 지식이란 것이 이 경우일 때가 아주 많다.

의견과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격정은 큰 패악의 원인이 된다. 정신이상자가 아니면서도 각종 패륜적인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얕은 지식을 사실로 믿고 격정에 사로잡힌 사례들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거나 믿는 것을 틀렸다 하고, 그것을 방해한다고 할 때 인간은 격한 감정을 갖게 되고 그 결과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의 의견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곧 사실이라고 믿는 태도, 그것은 조직의 적일뿐만 아니라 인류의 적이기도 하다.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을 이유 없이 박해하거나 기독교 국가에서 이슬람 사람들을 모두 테러범인 것처럼 여기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최고 단계의 지식은 직관이다. 이것은 대상 그 자체를 느끼고 향유하는 데서 오는 지식으로, 대상과의 합일에서나 나오는 것이다. 이런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말수가 적거나 눌변일 경우가 흔하다. 무언가를 느끼고는 있지만 그것을 쉽게 언어로 표현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남의 의견을 반박할 때도 매우 조심스럽게 반론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자신의 의견이 반박당하고 있는 줄도 모를 때가 있다. 조직의 장이 이런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참모로 두고 그의 의견을 따르면 실수하는 법이 없다. 학식과 배경이 풍부하지 않으면서도 가질 수 있는 지식, 그것이 최고의 지식이다.

사실, 이런 지식을 우리는 이미 우리의 부모에게서 보아 왔다. 우리 부모들은 문자나 겨우 해득할 정도의 교육을 받은 분들이면서도 자식의 일을 판단하는 데는 한 치의 틀림이 없으셨다. 그 판단은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학식이나 교육 따위가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식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자식이 담배 피우기를 즐겨하는 것을 알기에 어디서 담배라도 한 갑 생기면 그것을 버리지 않고 잘 감춰 두었다가 자식이 오면 슬며시 꺼내 주면서도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는 것.

조직의 힘은 구성원들이 얼마나 그 조직을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힘은 국민 각자가 그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사랑이란 묘한 것이어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거나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칸트가 말했듯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먼저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나라를 사랑하는 감정은 아주 단순한 데서 일어난다. 그것은 많이 가진 자,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자, 남다른 혜택을 누리는 자가 그것이 모두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가질 때 발생한다. 얼마 전 한 인기 연예인이 해병대에 지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연평도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북한의 포탄이 갑자기 날아올지도 모를 곳에서 근무하기 위해 그는 해병대에 지원했다. 우리나라에 고집부리고 억지쓰는 지식인은 가고 이런 지식인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