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눈이 자주 내린다. 게다가 이상한파로 눈이 녹지 않은 상황에서 또 눈이 내려 시민의 통행을 불편하게 한다. 눈 내리는 날이면 관계 공무원들은 밤새 비상대기하며 제설차량을 가동한다. 그래도 시민의 불편을 다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골목길까지 눈을 다 치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라치면 새벽부터 당직실 전화는 불이 난다. 왜 우리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았냐는 항의와 함께 국민의 혈세를 받는 공무원들이 뭐하냐는 호통이 뒤따른다.

요즈음 구제역 방역소독을 위해 공무원들이 주요 길목마다 초소를 설치하고 24시간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 밤샘 근무하는 직원들이 안쓰럽고 미안해 격려한다는 핑계로 초소를 순찰하곤 한다. 추위와 싸우며 눈 쌓인 도로를 지키는 직원들의 충혈된 눈을 차마 마주치기 민망스럽다. 잠시 함께 있자니 소독약을 피하려고 살포기 주변에서 더욱 속력을 내는 운전자, 간혹 차창에 얼음이 언다고 항의하는 운전자들에게 미안해하며 쩔쩔매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사람이 더욱 무안해진다.

눈이 펑펑 내린 지난밤 구제역 방역초소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언젠가 보았던 그림 하나가 뇌리를 스친다. 프랑스대혁명을 상징하던 그림이다. 가슴을 드러내고 한 손에는 프랑스 국기, 다른 한 손으로는 총을 들고 있는 여인의 그림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제목의 이 그림을 볼 때 ‘무엇이 저 여인을 여자로서의 수치심도 잊고 국기와 총을 들고 나서게 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얼마나 힘들고 절실했으면 그러했을까? 무엇이 그리 절실했고, 무엇을 얻은 것인가?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은 왕과 귀족의 억압과 수탈에 항거한 투쟁이었고, 그 피의 값으로 시민은 자유와 평등을 얻었다. 노예 같은 삶에서 당당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당연히 절대군주제를 타파하고 민(民)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그 여인은 인간답게 살 권리,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평등 권리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민혁명 이후의 역사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온 듯하다. 특히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러하다.

눈이 내리면, 행정기관에 전화하기 전에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러 나가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당국에 목청을 높이기 전에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시민이 하나부터 열까지 행정당국이 모든 일을 해 주기를 바란다면, 시민은 더 많은 공무원을 고용하고, 더 많은 장비를 사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공공부문이 비대해지고 작은 정부는 자꾸 멀어져 간다. 냉정하게 말하면 관(官)은 일(사업)과 사람(인력)과 돈(예산)이 많아지면 힘이 강해지니 다소 고단하더라도 신 나는 일이다.

혹시 공무원들이 일하기 싫어서 하는 말이라고 오해하지 않는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눈이 오면 내 집 앞은 내가 쓸고, 구제역이 오면 나부터 보초를 서야 한다. 여기에 투입할 인력과 예산이 있으면 더 급한 데 쓰거나 더 큰 성과를 올릴 데 쓰거나 아니면 감축하여 세금을 낮추라고 말해야 한다.

이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균형감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자칫 시민의 권리만이 강조될 때 값지게 얻은 시민의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시민의 권리만을 주장하며 누린 각종 혜택이 또 다른 우리의 권리를 억압할지 모른다.

프랑스대혁명 때 자유와 평등을 갈구하며 가슴을 훤히 내놓고 국기와 총을 들고 나섰던 그 여인의 절실함으로 시민의 의무를 지켜나가야 한다. 내 집 앞의 눈을 치우고, 방역초소를 내가 지키고,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고, 교통질서를 지키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지켜나가야 한다.

제1의 시민혁명이 시민의 권리 쟁취라면 제2의 시민혁명은 시민의 의무이행일 것이고, 이는 진정한 시민혁명의 완성이다. 지역의 경쟁력은 균형감 있는 시민의식에서 나올 것이며, 대한민국의 힘도 여기에서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이준원 공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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