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의 여명’ 작전에서 다발성 총상을 입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피격 13일 만인 2월 3일 설날에 의식을 회복하여 정월 초하룻날 대한민국에 내려준 축복으로 온 국민이 기뻐했는데, 급성호흡부전증세로 다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석 선장은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어 총부리 밑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해적에 맞서는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여 우리 해군 청해부대의 구출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물론 이번 구출이 직접적으로는 최영함의 치밀한 작전지휘와 자랑스러운 해군 특수전부대(UDT/SEAL)원들의 기민한 침투와 진압의 성과이지만, 배와 선원을 지키려는 석 선장의 불굴의 용기와 투철한 책임감이 없었더라면 이 작전이 성공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는 목숨을 걸고 배가 소말리아 쪽으로 운항하는 것을 지연시켰으며, 최영함에 해적의 인원과 무장상태를 알리고 새벽에 감시가 느슨해진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작전으로 구출된 갑판장이 인터뷰에서 “석 선장이 깨어나면 ‘목숨이 몇 개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온 국민이 석 선장의 건강 회복을 한마음으로 염원하는 것은 그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책임 있는 삶’을 사는 이 시대의 드문 의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구한 것은 단순히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이 아니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한없이 추락하던 이 나라의 자존심이었다.

최영함 조영주 함장의 말대로 ‘군인의 본분은 세계 어디서라도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다. 이번 해군작전을 통하여 국민들은 자신의 방패인 나라와 국군의 존재를 실감하고 최소한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3월 우리들은 ‘책임 있는 삶’의 표상인, 또 다른 의인을 잃었다. 해군 UTD의 산 역사인 한주호 준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침몰한 천안함에서 한 사람의 실종자라도 더 구해내려고 만 52세의 노장의 몸으로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순국하였다. 그의 영결식에서 많은 UTD 장병들이 눈물을 흘리며 군가를 부를 때 온 국민도 마음으로 울었다. 그가 강인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참된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로 기억된다. 어떤 주간지가 30개 분야 전문가 1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우리 시대의 영웅’ 10명을 선정하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3위가 모두 전직 대통령이었다. 한 시대를 이끈 대통령들의 업적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권력을 쟁취하여 이를 행사한 사람이 영웅이라는 낡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씁쓸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순위는 떨어지지만 고 김수환 추기경, 안철수 교수,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이름을 올려 다행이었다. 과연 영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일까? 비상한 능력과 큰 업적인가?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배경인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사회 공동체에 이바지한 사람, 대의(大義)와 공익을 위하여 책임을 다하여 헌신한 사람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한주호 준위, 석해균 선장과 같은 우리의 이웃이다. 불길에 뛰어들어 산화한 소방대원, 흉악한 범죄와 싸우다 다쳐 병석에서 고생하는 경찰관, 구제역 방역 현장에서 쓰러진 공무원들이다. 100경기 이상 국가대항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뛴 박지성·이영표 선수,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봉에 올라 나라를 빛낸 김연아·박태환·이승훈 선수, 정명훈·앙드레 김도 우리들의 영웅이다. 우리 충청도를 빛낸 박찬호, 박세리, 이봉주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6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 유학 중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의 10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전·현직 일본 총리가 추도사를 보내고 NHK가 동원되었으며 주요 신문 1면에 관련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일본이 의인을 어떻게 추모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안함 수색 참여 후 돌아가다가 침몰한 금양호의 경우 선체는 물론 많은 선원들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한국과 많이 비교된다.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기억시킬 것인가? 우리들이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을 만드는 데 인색하지 않은지, 우리 사회의 풍토가 남의 장점보다 허물을 들추어내는 청문회식 가학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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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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