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가치조건 충족 선결 지역주민·기업참여 이끌어야

무령왕릉이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건 지난 1994년이다. 이후 백제사와 동북아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만큼 세계유산에 등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왜 안됐을까? 지난 2006년 발표된 ICOMOS 한국위원회의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정비 보고서’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했다. 무령왕릉은 한국과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 가치가 탁월한 것은 사실이나 세계유산의 보편적 가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왕릉이 아닌 공주박물관에 전시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쉽게 말해 가치는 있는데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령왕릉 세계유산 등재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다소 충격적인 보고서 내용에 충남도와 공주시, 부여군은 방향을 선회했다.

ICOMOS 한국위원회가 제시한 대안을 수용해 인접한 공산성과 부여의 백제유적과 문화벨트를 형성시켜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공주와 부여의 역사유적 9개 지구·19개 유산이 공주·부여역사유적지로 결정됐다. 지난해 1월 11일 이들 유적지구는 충남도와 공주시, 부여군 등 지자체 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세계유산잠정목록으로 공식 등재됐다. 남은 과제는 세계문화유산 본등재다.

전문가들 무령왕릉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문화유산 자체의 관리와 함께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작성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계유산으로의 등재가 신청된 유산은 ICOMOS에서 분야별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친 뒤 ‘등재’, ‘보류’, ‘반려’, ‘등재불가’의 판정을 받게 된다. ‘등재’ 판정을 받을 경우 세계유산위원회는 신청 유산을 그대로 세계유산으로 인정한다. ‘보류’로 판정되는 경우에도 자료의 보완여부에 따라 재심의 기회가 주어진다. 문제는 ‘반려’나 ‘등재불가’다. 이 경우 다시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이 불가능해진다. 등재 신청서 작성과 준비에 공을 들여야하는 이유다. 기초자료가 부족하면 등재신청서 작성이 어렵다. 평상시에도 유산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야 충실한 자료수집이 된다.

경주 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2000년까지만 해도 유네스코에 제출할 자료와 절차가 지금처럼 까다롭지 않았다. 물론 국가간 경쟁도 덜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신청서 양식이 까다로워졌다. 국가 당 1년에 한 분야에 한 건만 신청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스토리 텔링’이 심사에서 당락을 좌우하기도 한다. 또 현지 실사자의 의견이 심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지 실사자가 패널회의에서 어필할 수 있는 소재를 만들어 내는 것도 과제다. 등재 지역 주민들의 서명운동, 기업참여 등 패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 거리도 만들어 내야 한다. 해당지역 주민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 조건인 셈이다.

박병준 기자 joonzx@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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