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복지가 화두다.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했던 옛 시절을 회고하면 복지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현 상황이 행복하기까지 하다. 복지 관련 정책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 한국 사회의 지속적인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이 문제가 각 정당의 당리당략에 입각하여 표심을 자극하는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복지의 쟁점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의 경우 복지정책의 범위와 권한상의 문제를 놓고 중앙정치 무대를 넘어 지방정치 차원에서도 여야 간 대립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학교급식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별, 계층별 입장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상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이상 추구는 혼선을 부추긴다. 플라톤은 그가 구상한 이상국가를 현실정치에서 두 번에 걸쳐 구현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를 배경으로 쓰여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네”라는 푸념이 나온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상은 현실을 반영할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지 현실과 동떨어지면 그야말로 이상 그 자체로는 허무한 것이 되고 만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무상급식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2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증세는 또 하나의 이상이다. 세금은 납부자가 그만큼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즉 ‘행복한 납세자’가 될 때 불만이 쌓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부유층에게 세금 부담을 줄 경우 그것에 대한 보상을 위해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이 돌아올 가능성은 한국 사회의 경우에 너무나 크다. 요즘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이상기후로 인한 농산물 공급량 감소로 인해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복지를 증진한답시고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결과가 뻔한 정책을 실시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결국 보편적 복지에 근거한 무상급식은 현재로서는 현실을 외면한 이상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지금은 저소득층 및 사회적 배려 대상 학생들에 대한 양질의 무상급식 확대가 필요할 때다. 그리고 정부 정책변화 및 지자체의 지원 폭 등 현실을 감안하여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보편적 복지랍시고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급식을 확대하는 것은 어려운 계층의 사회이동통로 그 자체를 봉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은 곧 미래의 발전가능 기회를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상은 자체적으로 미래를 준비해 갈 여력이 있다고 치자. 그렇지 못한 분들은 무엇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부족한 부분을 국가나 자치단체에서 채워 줘야 우리가 소위 말하는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 본다면 무상급식의 전면확대실시가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 미래희망을 박탈해 가는 무서운 일일 수도 있고 불평등사회를 고착화시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원칙적으로 잘사는 학생은 무상급식 대상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사례는 없다.

김문영(대덕연구개발특구복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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