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사비시대 백제 찬란한 유적 곳곳에

공주와 부여는 각각 웅진-사비시대로 이어지는 백제의 수도다. 당연히 고대 백제인의 삶과 죽음, 사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이 즐비하다.

공주는 공산성과 옥녀봉 산성, 송산리 고분군, 정지산 유적, 수촌리 고분군, 고마나루 등 웅진백제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 고고학 사상 엄청난 국보와 보물을 쏟아낸 무령왕릉은 웅진백제를 마감하는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부여는 무령왕의 아들 성왕이 사비백제 시대를 연 곳이다.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 고분군, 청마산성, 구드레, 왕흥사지 등이 백제 후기의 찬란한 위상을 보여준다.

습지였던 부여 일대는 성왕의 치밀한 천도 계획으로 한반도 최초의 계획도시로 거듭났다. 금강으로 둘러 싸인 천혜의 요충지면서도 넓은 평야에서는 풍부한 농산물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웅진의 토호 귀족들을 정리하고,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사비는 동서남북으로 9m폭의 대로와 4m 폭의 소로를 갖춰 마차가 지날 수 있는 도로망을 구축했다. 도시는 격자형의 정연한 도로망을 기준으로 도시 전체가 동·서·남·북·중의 5부로 나뉘고, 각 부는 5항으로 구분됐다. 하수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기획 단계부터 계획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왕궁과 국가사찰, 관청, 조경시설 등의 체계적 배치도 돋보인다. 각종 성곽은 자연지형을 이용해 도시 내외를 구분하고, 방어를 위한 나성을 쌓는 독창적인 건축술을 엿볼 수 있다. 사비는 향후 익산 천도의 롤 모델로 적용될 만큼 선진 도시 메카니즘을 선보였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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